나는 대학 교수였다. 안암동에 있는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거기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1989년6월. 해임 이라고도 하고
쫓겨났다 라고도 한다.
나는 원래 반골이었다. 이 사람과도 시비하고 저 사람과도
시비하는 시비꾼이었다. 대통령에게도 시비하고 정치인들에게도
시비하고 교수들에게도 시비하고 언론에도 시비하고..... 강의
하면서도 상대방이 나쁘다고 생각되면 닥치는대로 욕하고
헐뜯고 물어뜯는 시비꾼이었다. 그러다가 목이 뎅그렁 잘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잘 잘렸다. 부정부패추방 같은 일을 할수있게
되었으니까.
그 때는 학생을 가르쳤지만 그때가 오히려 쉬웠다. 지금은 일반
사람들을 가르쳐야한다. 학생들은 가르치면 대개는 고개를
끄떡인다. 가르치면 가르치는대로 먹혀 들어간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좀처럼 먹혀들어가지가 않는다. 그런데다
부정부패가 이러쿵 저러쿵 하게 심각하다고 말하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아무리 설명해도 정말 그렇게 썩었느냐며
고개를 갸우뚱 한다.
내가 대표로 있는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이하 부추연)는 이
세상이 얼마나 썩었는지 가르치는 데다. 썩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는지를 보여 주는 데다. 그러기 위하여 스스로 썩지 말아야
하는 데다.
참으로 어려운 곳이다. 부추연은 이런 것을 지키기 위하여
정부의 지원 받는 것을 사절하기로 하였다. 주어도 안 받지만
달라고도 안한다. 영원히 그러기로 하였다. 그러므로 부추연
직원들은 월급이 없다.
참으로 눈물겨운 가시밭길을 걸어 가고있다. 부추연에 앉아
있으면 수 없이 전화가 온다. 거의 다 피해자들이다. 그런데
거의 다 말기 환자들이다. 암 3기쯤 되는 중환자들이다. 무슨
뜻이냐 하면 치료할래야 치료할수 없는 환자 라는 뜻이다. 왜
이런 환자들이 주로 전화를 할까? 경찰을 믿다가 발등 찍히고
검찰을 믿다가 발등 찍히고, 마지막으로 법원을 믿었으나 역시
발등을 찍혀 올데 갈데 없는 중환자들이 전화를 한다. 저 좀
살려달라고.....그래서 왜 이제 전화를 하느냐고 하면 그럴줄
알았느냐는 것이다. 차마 이렇게 속을 줄이야 꿈에도 생각
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중환자들이 얼마나 될까? 놀라운 일이지만 경찰서와
검찰과 법원을 출입하며 나좀 살려 달라고 몸부림치던 사람들은
거의 다 사형선고를 당하고 만다. 죄를 지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형선고 같은 처분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사기를
당하거나 폭행을 당하여 상대방을 고소하면 곧이 곧대로
처리되어야 하는데 어림도 없다. 배경도 없고 돈도 없으면
싸우나 마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권력에 희롱을 당한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기꾼이나 폭행범들이 무죄를 받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고 빠져나간다. 법에는 억울하면 위에다 호소하는
제도가 있다. 항고나 상고하는 제도가 있고, 그래도 억울하면
재항고나 재항소 하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이것도 형식에
불과한 경우가 태반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면 크게 실망하겠지만 사실인걸 어떡하랴?
부추연 대표로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나라는 헌법이
있고, 헌법을 지키는 경찰도 있고 검찰도 있고 법원도 있지만
별로 믿을 데가 못된다. 이 것은 꾸며대는 말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경찰과 검찰과 판사 옆에 변호사가 있다. 이 사람들은 믿을 수
있나? 마찬가지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쓰레기 같은 사법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 쓰레기를 청산해야 부정부패가 없어진다.
우리 나라에서는 돈 없으면 당해야 한다. 빽 없으면 당해야
한다. 그래서 돈이 좋다. 돈은 어느 나라에서도 좋다. 그러나
돈없는 사람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
10점도 못된다. 빵점이라고 해야 정확한 답이 될 것이다.
부정부패는 아무나 저지르지 못한다. 저지를 만한 능력이 있는
자들이 저지른다. 즉, 힘을 쓸 수 있는 자들이 저지른다는
얘기이다. 그러므로 부정부패가 저질러지면 크건 작건 권력이
개입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부정부패를 추방하는
일은 권력과 맞서는 일이다. 그래서 어렵다. 위험하다.
어떤 때는 생명의 위협마저 겪게 된다. 부패 권력은 정말
무섭다. 부패 권력은 자유와 평등을 사정없이 파괴한다.
그들은 법을 휴지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므로 부패권력과
싸워야 한다. 얼마나 어려운 싸움인가?
나는 오늘도 전쟁터에 출근을 했다가 퇴근한다. 내일도
전쟁터로 나간다. 부패 권력과 싸우기 위하여... 언제나
이런 무모한 싸움을 중단하고 두 다리 쭉뻗고 살 수 있을까?
시민단체가 필요없는 평화스런 그 날을 위하여 내일 또
전쟁터로 출근해야 한다.
윤 용
(부추연 상임대표, 전 고려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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