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남승우 기자]

한 여성 네티즌은 문자메시지 때문에 가정이 파탄 위기에 내몰렸다. 그의 아버지 휴대전화엔 작년 11월 무렵부터 ‘마누라가 ○○지역 출신 남자랑 놀러 다니네요’ ‘당신 마누라 단속 잘 하세요. 남자가 한 둘 아니네요’ 같은 문자가 끊이지 않았다. 발신번호가 늘 ‘010’으로 찍혀와서 보낸 사람과 사실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문자가 오는 날이면 그의 아버지는 만취 상태로 들어와 어머니를 마구 폭행했다.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이 같은 사연을 올린 그는 “그 문자가 오면 진짜 죽을 지경이고 미쳐버릴 것 같다”며 “보낸 사람을 붙잡아서 처벌하고 정신적 피해를 보상 받고 싶으니 처벌할 방법을 꼭 알려달라”고 하소연했다.

문자메시지가 월 이용량 60억 건에 이르는 가운데, 장난문자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경찰청이 추정하는 문자메시지 관련 민원은 하루 평균 100여 건 수준. 신고되지 않은 경우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장난문자들은 발신자 번호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주로 이용한다. 현재 대부분 휴대전화 제품들은 문자를 보내는 단계에서부터 발신자번호를 원하는 대로 입력할 수 있다. 웹 사이트나 메신저 등을 통해 문자를 보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현재 주요 포털사이트 지식게시판 등에는 “발신번호를 조작해 문자 보낸 사람을 어떻게 잡느냐”는 문의가 다수 접수되고 있다.

장난문자는 말 그대로 ‘장난’에 머무는 경우가 많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선 마음이 편치 않다. 김모(26·직장인)씨는 며칠 전 ‘4444’란 발신자번호로 온 문자를 받고 불쾌한 기분을 느꼈다. ‘X새끼’ ‘죽어라’ 등의 내용을 담은 문자가 5분 간격으로 네 개나 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전에도 이런 문자를 여러 번 받은 터라 참을 수 없어서 그 날 하루 종일 의심 가는 친구들에게 다 전화를 돌렸는데 ‘대체 날 의심하는 이유가 뭐냐’는 대답과 함께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불법 공유 프로그램을 이용한 혐의로 사이버수사대로 출두하라(발신자 번호 112)’는 문자를 받은 박모(26·회사원)씨는 “사법처리되면 어쩌나 불안에 떨었지만 ‘경찰·검찰소환 통보는 우편이나 음성통화를 통하는 게 원칙이고 문자로 오는 경우는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설명에 안도했다”며 “하지만 계속 불안한 기분이 남아 찜찜했다”고 말했다.

장난문자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네이버 아이디 ‘khw***’인 네티즌은 “누군가가 ‘123’이란 번호로 문자를 보냈는데 부모님이 이혼할 정도로 우리 집안을 파탄으로 몰아간다”며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든 이 사람을 꼭 잡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전화번호를 도용(盜用)한 문자가 번호 주인을 억울한 처지로 몰기도 한다. 인천에 사는 중학생 A군은 누군가가 자기 번호를 도용해 보낸 문자 때문에 법적 처벌을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는 지난 8월 “한 아저씨가 전화를 걸어와 내가 보낸 적도 없는 문자 때문에 이혼하게 됐다고 화를 냈다”며 “보낸 적 없다고 호소했지만 그는 ‘문자수신 기록을 뽑아놨으니 그런 말은 법원에서 하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올해 초 발신자가 자신의 번호로 되어있는 장난문자를 여러 번 받았다는 한 여고생(17)은 “심지어 내 번호로 친구들에게 이상한 내용의 문자를 보내는 바람에 오해를 받아 정말 기분이 나빴다”며 “범인을 얼른 잡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자 발신자번호 추적이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문자를 보내면서 발신자 번호를 숨기는 것 자체는 법적인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의 2(송신인의 전화번호 등의 고지) 제1항은 ‘송신인이 전화번호 등의 송출을 거부하는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에는 전기통신사업자가 송신인의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자를 보낼 때 발신번호를 바꿨다면 ‘자신의 전화번호를 보내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를 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원래 발신자 번호는 원칙적으로 알려줄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제2항에서는 ‘폭언·협박·희롱’ 등의 경우엔 알려줄 수 있다는 예외가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 KTF, LG텔레콤 등 이통사들은 직원이 문제의 문자를 직접 본 뒤 여기에 해당하는지를 판별한 뒤에야 발신자번호를 보여줄 지 여부를 결정한다.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여러 번 와야 한다는 단서가 붙기도 한다. 이 때문에 내용을 보여주기 민망하거나 귀찮아서 장난문자 신고를 꺼리는 사람도 있다.

까다로운 절차를 모두 거쳤더라도 웹투폰(web to phone), 즉 인터넷사이트나 메신저 등을 이용해 보낸 경우에는 전화번호가 아니라 운영 업체의 고유번호밖에 알 수 없다. 따라서 경찰이 해당 업체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밟아야 하는 여러 절차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업계관계자들은 “고객 입장에선 왜 자신의 정보를 마음껏 알 수 없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규정상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업계관계자들은 “그래도 잡을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통사들은 문자 수·발신 정보(문자내용은 제외)를 1주일 동안 보관한다. 인터넷 상으로 문자를 보낸 이른바 ‘웹투폰(web to phone)’의 경우도 추적에 시간이 걸릴 뿐 대부분 로그인(log-in)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발신자 기록은 남는다. 발신자가 확인되면 처벌도 가능하다. 내용에 따라 형법(명예훼손죄·모욕죄·협박죄)과 성폭력특별법 등이 적용된다. 문자메시지를 휴대전화에 저장한 뒤 그 내용을 고소장에 기재해 경찰서 민원실에 제출하면 된다.

휴대전화끼리 문자를 주고 받는 폰투폰(phone to phone)의 경우, 사유만 확실하면 이통사 본사나 고객센터 등을 찾아가 바로 확인할 수도 있다. 한 여성 네티즌(네이버 아이디 qwer***)은 작년 초 조작된 회신번호로부터 발송된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표현이 힘들 정도로 선정적이고 음란한 내용이었다. 그는 즉시 이동통신사 본사를 방문해 사유를 설명하고 정확한 핸드폰 번호를 찾아냈다. 그 뒤 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전화를 걸어 범인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절차만 까다로울 뿐 발신자추적 가능성은 기술적으로 항상 열려있다”며 “장난문자를 보내는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든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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