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들어 한국 사회의 투명도는 전반적으로 많이 향상된 반면 아직도 일부 분야는 정화의 바람에서 비켜앉아 부패와 비리의 구조를 온존시키고 있다. 특히 각 분야에서 관행이라는 이름 하에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저질러지고 있는 비리의 사슬은 한국 사회가 계속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마저 앗아가버린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부패사각지대’를 앞으로 8회에 걸쳐 고발한다.
법과 정의의 수호가 직업적 임무인 판·검사와 변호사들에게는 일반인들보다 더욱 높은 도덕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오히려 법조계가 우리 사회 부패·비리 구조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판·검사, 변호사들이 관행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비리는 국민들의 신체·재산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많다는 점에서 어느 분야의 비리보다 심각하다.
법조계의 부패는 크게 ▲브로커를 통한 변호사들의 수임비리 ▲전관예우·연고주의로 나누어진다. 그나마 노골적인 전관예우는 사법부의 자체 정화와 사회의 투명성에 힘입어 줄어들었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긍정적인 평가이나 수임비리에 대해서는 변호사들조차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변호사들간 경쟁이 격해지면서 예전보다 더 심해졌다는 것. 수임비리는 변호사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는 것을 넘어서서 의뢰인들에게 부담을 떠넘김으로써 국민들에게도 직접적인 피해를 준다.
법조계 부패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법연수원’과 출신 법대 등을 통해 연결되는 폐쇄적인 집단의식과 동류(同類)의식이라고 입을 모은다.
임지봉 건국대 법대 교수는 “우리나라의 판·검사, 변호사는 사법시험을 거쳐 사법연수원이라는 하나의 기관에서 집단적으로 배출된다”며 “이들이 알게 모르게 갖게 되는 동류의식 때문에 판결이나 검찰 처분이 사사로운 의리나 인정에 끌려 행해질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공개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전관예우나 정실에 의한 처분이 아직 존재하는 것은 불안에 젖은 의뢰인들이 여전히 ‘전관’을 찾기 때문이다. 승소율이나 전문성 등 변호사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에서 국민들은 담당 판·검사와 연수원 동기, 대학 동기 등 ‘연고’를 들먹이는 브로커들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변호사들의 판·검사 교제비 명목 요구에도 순순히 돈을 내준다.
◈변호사들의 판·검사 교제비 요구〓부장판사 출신인 L(61) 변호사는 ‘범박동 재개발사업 뇌물비리’로 구속된 기양건설 김모 회장의 변호를 맡겠다는 구두약정만 한 채 “수사팀에 인사하는 비용이 필요하다”, “수사팀과 약속이 잡혔다”며 교제비 명목으로 1억원을 요구, 받아냈다. 수사결과 수사팀과 약속사실이 전혀 없는데다 1억원은 자신의 사업자금과 사무실 운영자금으로 소비됐다. 군법무관 출신인 B(45) 변호사는 지난 8월 자신이 맡은 의뢰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소자의 소개로 구치소에 수감중인 김모씨를 찾아가 “당신의 사건을 재판 중인 재판장이 내 고등학교 후배다. 로비를 통해 선처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교제비 명목으로 2000만원을 받아냈다.
변호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의뢰인들이 먼저 찔러주는 경우도 있다. 모 변호사는 “구속상태의 의뢰인 가족이 판사랑 교제하라면서 3000만원을 주기에 거절했더니 ‘능력이 없다’면서 선임약정을 취소하고 다른 변호사에게 갔다”고 털어놨다.
◈법조브로커〓브로커를 통한 사건 수임을 ‘남들도 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등 범죄로 인식하지 않고 검찰 수사에 걸리는 것은 단지 ‘운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변호사가 적지 않다고 변호사들은 귀띔한다. 그러기에 법조윤리교육을 강화하고, 현재 대한변협에 있는 변호사 징계권을 다른 기관에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에서 활동하는 형사사건 전문 브로커들은 판·검사의 출신지역·출신학교·법조 경력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 의뢰인들에게 ‘불구속 수사’나 ‘보석허가 및 집행유예’를 조건으로 내걸며 접근하고 사건을 수사중인 주임검사나 담당 재판부의 재판장과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는 변호사를 소개해 알선료를 챙긴다. 수임 액수의 20~30%가 일반적이나 선임계가 제출되지 않은 사건은 50%까지 챙기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커들은 수임료 외에 승소 사례금까지 포함한 금액을 기준으로 알선료를 받기 때문에 손해배상 사건의 배상금을 높이기 위해 병원 관계자들을 상대로 직접 로비해 장애율을 높이는 경우도 있다.
◈대형 로펌의 브로커〓정부의 경제부처에 근무하던 고위 공무원들이 자리를 떠나자 마자 대형로펌으로 직행하는 일을 두고 로펌 역시 ‘브로커를 통한 수임비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고문’이라는 직함을 갖고 로펌에 고용된 이들은 자신이 일하던 부처와 관련된 사건을 유치하는 일을 맡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임동진 변호사는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 고위공무원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 사주는 고객을 로펌에 소개·알선·유치한다면 이는 변호사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고급 전관들의 고공로비 또는 안면로비?〓김태정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 2000년 ‘이용호게이트’의 주역 이용호 G&G그룹 회장의 변호인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1억원을 받고 서울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1억짜리 전화통화’ 변론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 거대 로펌들이 법원장이나 고검장·지검장 등 검사장급 출신 인사들에게 억대의 연봉을 지급하며 영입에 열을 올리는 주된 이유가 중요사건을 맡고 있는 후배 판·검사들에게 얼굴을 비추고 전화 한 통화로 눈에 보이지 않는 변론을 하는 ‘고공로비’를 위해서라는 것은 변호사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예전과 달리 검찰은 비교적 ‘수사에 대한 청탁’과 무관해졌다고 항변하지만 의뢰인들은 여전히 ‘전관의 능력’에 기대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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