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오늘의부정부패 > 공사비 20~30%는 뇌물

나의 고백 - 도로포장업자

나는 경기도의 한 중소도시에서 도로포장업을 하는 최기석(가명·39)이다.

요즘 뉴스에는 온갖 뇌물 얘기가 판을 친다. 어떤 사람들은 뉴스에 등장하는 뇌물 전달수법을 보고 “어쩌면 저럴수가”라며 놀란 표정을 짓는데 나같은 사람에게 그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생활의 일부분이다.

사업을 한지 10년정도 됐는데 처음엔 조용한 자리에서 편지봉투에 돈을 담아 공무원에게 건네는 방법을 자주 썼다. 그러나 갈수록 액수가 커지면서 돈을 건네는 ‘기술’도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1년초에는 시청의 고위공무원에게 그해에 계획된 수의계약 물량을 많이 딸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하며 드링크 제품 상자에 1000만원을 담아 건넸다.

지난해 초에는 같은 부탁을 위해 두꺼운 전화번호부 가운데를 오려서 파내고 1만원짜리 신권으로 500만원을 담아 실무자 책상에 놓고 오기도 했다.

지난해 8월쯤에는 수억원짜리 입찰공사 과정에서 감독관과 공원 주차장에서 만나 자동차 트렁크에 500만원이 담긴 쇼핑백을 넣어주기도 했고 지난 연말에는 “망년회 비용이나 하시라”며 아예 내 명의의 현금카드를 건네본 적도 있다.

물론 돈을 주고 향응을 베풀다 보면 아깝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두달전쯤 새벽부터 밤까지 공사 현장에 나가 있다가 피곤한 몸으로 퇴근했는데 알고 지내는 공무원으로부터 “우리가 모여 있으니 최 사장이 한잔 사”라고 전화가 왔다. 당장 뛰어나가 정성껏 술시중을 들었지만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뇌물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고 그나마 일을 맡더라도 시달리게 되니 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어지다보니 요즘은 이 트집 저 트집 잡아 은근히 요구하는 공무원보다 아예 노골적으로 얼마를 달라는 쪽이 편할 정도다.

누군가 나에게 “왜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느냐”고 묻는다면 “살기 위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우리 업자들에게 뇌물은 사업을 좀더 편하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존수단이다. 내가 공사 하나를 낙찰받았다고 치자. 공사라는 것이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면 한이 없는 것이어서 감독관이 맘먹고 심통을 부리면 도저히 공정을 마칠 수가 없을 뿐더러 비용도 더 들어가기 마련이다.

이러다보니 업자들은 공무원앞에선 한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2년전쯤 3억원짜리 공사를 낙찰받았는데 담당 공무원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최사장 이번 공사는 꼭 A업체와 B업체에 하청을 줘야 돼. 알지?”

“A업체는 좀… 공사를 너무 성의 없게 해서.”

“이거 왜 이래. 잘아는 사람이.”

아파트 등 일반건설은 하도급이 가능하지만 도로공사와 같은 전문공사는 법으로 하도급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공무원들은 법으로 금지돼 있는 하도급을 공공연하게 유도하고 공사를 낙찰 받은 업체는 이를 안들어 줄 수가 없다. 이 과정에서 하도급 업체가 공무원에서 알선료를 주는 것은 관례다.

또 공무원에게 잘만 보이면 쉽게 많은 돈을 버는 수도 있다. 공사를 하다가 불필요한 설계변경을 해서 1억원짜리 공사를 2억원으로 늘리는 방법인데 이 역시 공무원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수의계약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수천만원 단위의 소규모 공사는 수의계약이 가능한데 여기서 가장 많은 비리가 생기는 것이다.

담당 공무원은 평소 자신에게 잘보여온 업자에게 공사를 주기 마련이고 업자는 보다 많은 수의계약을 따내기 위해 담당 공무원을 잘 관리해야 한다.

수의계약의 짭짤함을 아는 공무원들은 공개입찰 대상인 큰 공사를 부분부분 잘라서 수의계약 대상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특히 민선 단체장 이후에는 시장의 측근들에게 수의계약 알선권이 주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시장이 자신의 측근에게 “이번에 수의계약 몇건이 있는데 당신이 가져가”하고 던져주면 이 측근은 지역의 업자들에게 계약을 알선해 주고 리베이트를 먹는 식이다. 공사수주에도 중간 브로커가 있는 셈이다.

이런 브로커 역할은 시장의 측근뿐만 아니라 관공서와 잘 통하는 지역의 유력 건설업체가 맡기도 하는데 중소업체들은 이 유력업체에도 잘보여야 한다. 그래야만 수의계약도 얻어갈수 있고 하도급도 할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공사에 이같은 커넥션이 있다보니 공사비의 20~30%는 뇌물과 접대에 쓰인다고 보면 맞다. 업자들은 이같은 뇌물 비용을 ‘현장관리비’로 기록한다. 사정이 이러니 공사가 제대로 될리가 없다. 대충 공사를 해도 돈을 받은 공무원은 문제삼지 않고 넘어간다.

나는 길을 가다가 새로 포장한 길 한가운데 맨홀뚜껑이 툭 튀어나와 있거나 노면이 울퉁불퉁 한 것을 보면 절로 쓴 웃음이 나온다. ‘여기도 뻔하군….’

이처럼 관행처럼 뇌물을 주고 받다 보니 업자나 공무원이나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려 있다.

지난해 초 업자들이 공사입찰 관계로 관공서 사무실에 모였는데 난데 없이 공무원 하나가 ‘청렴계약이행각서’라는 걸 나눠줬다.

최근들어 정부 각기관에서 시행하는 것인데 업자가 ‘공사를 수주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도 뇌물을 주지않고 공정한 방법으로 사업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각서를 나눠주는 공무원의 설명이 기가 찼다.

“위에서 하라고 해서 나눠주는 거니까 크게 신경쓰지 말고 써오세요.”

크게 신경쓰지 말라니…. 뼈 있는 말이었다.

서류를 받아 나오는 업자들의 반응은 더더욱 코미디 같았다.

“개××들. 귀찮게 서류만 하나 더 늘렸네.”

청렴계약이행각서. 어느 분이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현장에서 이건 한낱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백날 청렴하겠다고 각서를 써도 오늘도 뇌물은 오가고, 내일도 향응은 이어진다.

그런 분들에게 청렴계약서 같은 것 믿지 말고 우선 긴급을 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의계약을 없애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모든 관급 공사의 준공검사에 민간인을 참여시켜 원천적으로 비리를 차단하고 부실공사를 없애라고 주장하고 싶다.우리가 보기엔 이 정도만 해도 뇌물의 상당부분이 사라질텐데 왜 안하는지 모르겠다.

정리〓배한진기자 [email protected]

기사 게재 일자 2004/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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