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세무비리 > 사건청탁은 기본,탈세하려 돈세탁까지.

최근 대한변호사협회의 요청으로 법무부에서 '업무정지' 결정을 내린 '비리 변호사 7인'에 16년간 판사생활을 하고 지방법원 부장판사까지 역임한 전관 출신 변호사가 끼어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그의 1심 판결문에 기재된 범죄내용은 가히 범법자들의 그 수법과 흡사해 실망감을 더하고 있다.

1988년부터 판사 생활을 시작해 15년간 주변의 존경을 받으며 비교적 성실하게 근무해왔던 하모(49) 전 판사. 그에게 유혹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한 것은 퇴직하기 8개월 전인 2003년 6월이었다. 당시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부장판사로 근무하고 있던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법조 브로커 김모씨로부터 청탁을 받게 된다.

수원지방법원에서 재판 중인 B 회사와 C회사 사이의 특허권 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사건(이하 '수원사건')과 관련 "B사에 불리하게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니, 하 판사와 사법연수원 동기인 (수원지법) 재판장에게 부탁해 B사에 유리한 판결이 선고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판사 퇴직 후 청탁받은 사건 수임해 탈세까지

결국 하 전 판사는 같은 해 8월 초순경 동부지법 부근의 한정식 식당에서 수원사건 청탁 명목으로 김모씨로부터 100만원권 자기앞수표 5장(500만원)을 받게 된다. 정치에 뜻을 두고 있던 하 전 판사로서는 돈의 유혹을 참기 힘들었다.

심지어 그는 2개월 후 동부지법 내 자신의 판사 사무실에서 김씨로부터 같은 명목으로 10만원권 자기앞수표 100장(1000만원)을 받았고, 2004년 1월 초에는 김포공항 부근에 정차된 김씨의 승용차 안에서 다시 1000만원을 받았다. 수원사건 청탁 명목으로 모두 2500만원의 돈을 수수한 셈이다.

그리고 한달 뒤 하 전 판사는 동부지법 부장판사직을 퇴임하고 곧바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판사직은 그만 뒀지만 돈에 대한 하 전 판사의 집착은 더욱 커져갔다. 그가 직접 수원사건을 수임하고 나선 것이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지 며칠 되지 않아 하 전 판사는 B사 박모 대표이사로부터 김씨를 통해 수임료 중 착수금으로 5000만원을 받았다. 같은 해 5월 말경에는 수원사건 1심 성공보수금으로 2억원을, 7월 중순에는 항소심·상고심 변호사 수임료 명목으로 다시 1억원을 받았다. 수원사건에 대한 수임료만 3억5000만원을 받은 것이다.

특히 하 전 판사는 "수임료에 대한 세금을 납부하지 아니할 의도"로 수원사건에 대한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는 수임료로 받은 돈을 감추기 위해 차명계좌 등을 이용해 돈세탁까지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착수금으로 받은 5000만원 중 4000만원을 자신의 자형 이모씨의 예금계좌에 입금했다가 2개월 후에 자신의 예금계좌로 돌려받고, 나머지 1000만원 중 600만원은 자신의 차명계좌인 장모·김모씨의 예금계좌에 입금시켰다.

또 성공보수금 2억원 중 1억원도 장모 김씨의 계좌에 입금하고 나머지 1억원은 역시 본인의 차명계좌인 처남 김모씨의 계좌에 입금했다. 항소심·상고심 변호사 수임료 명목으로 받은 1억원의 경우, 보험모집인의 예금계좌에 입금한 후 명의를 빌린 처남과 처형을 보험가입자로 하고, 그 보험금 중 일부를 1억원으로 지급했다. 이렇게 해서 하 전 판사는 수임료 3억5000만원에 대한 세금 1억5000만원 가량을 탈세하게 된다.

재판부 "도덕성과 윤리성 생명으로 하는 법관이..."

▲ 지난달 8일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국민연대' 회원들이 서울중앙지법앞에서 법조비리 사건 관련자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러한 하 전 판사의 비리 행각에 대해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6월 15일 징역 1년과 2500만원 추징형을 선고했다. 하 전 판사에게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알선수재) 위반, 조세범처벌법 위반, 변호사법 위반 등이 적용됐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은 양형 사유를 밝혔다.

"피고인은 법관으로서 다른 법관이 진행하는 사건에 관한 청탁 명목으로 2500만원을 수수하였는바, 이는 엄격한 도덕성과 높은 윤리성을 생명으로 하는 법관에게는 있을 수 없는 과오라 할 것이고, 더군다나 피고인은 퇴직 후 수원사건에 관하여 수임을 하면서 합계 3억5000만원의 수임료를 받았는바, 이러한 수임료가 수원사건을 선임한 다른 변호사들의 수임료(착수금 2000만원, 성공보수 2000만원)와는 달리 거액인 점, 피고인이 퇴임 직후 사건을 수임한 점, 실제로 피고인이 담당 법관의 사무실에 수회 방문한 점 등을 고려하면 위 수임료의 성격에는 알선수재에 대한 사례의 성격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 전 판사가 이처럼 거액의 수임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판사 출신이라는 배경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실제 하 전 판사는 변호사 개업을 하자마자 이른바 '잘나가는' 변호사가 됐다.

브로커 김씨를 통해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 탈세까지 했던 2004년, 하 전 판사는 자신이 근무했던 서울동부지법에서 81건의 구속사건을 수임해 '수임 랭킹' 1위를 차지했다. 그는 다음해에도 동부지법에서 54건의 구속사건을 수임해 3위를 차지했다. 전관예우를 이용해 수임 사건을 '싹쓸이'한 셈이다.

하 전 판사를 비롯해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수임 사건 싹쓸이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전국 18개 지방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지방법원별 구속사건 수임 순위 10위 안에 든 개인변호사의 70% 가량은 판·검사를 지낸 전관 출신이다.

'잘나가는' 변호사 70%는 판·검사 출신

특히 수원지법은 수임 상위권 개인변호사 18명 전원이 전관 출신이었고, 서울 서부지법은 24명중 23명(96%), 서울 북부지법은 22명중 20명(91%), 의정부지법은 30명중 27명(90%)이 전관 변호사였다.

전관 변호사 비율이 80% 이상인 지방법원 9곳 가운데 대구지법을 제외한 8곳은 수도권 소재인 것으로 조사돼 지방보다 수도권의 전관 예우가 더 심각하다고 노 의원은 지적했다.

또한 수임 상위권 전관 변호사 305명의 94%(287명)는 퇴임 후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했으며, 3년 연속 수임 순위 10위 안에 든 개인변호사 28명중 27명이 전관 변호사로 조사된 것 역시 전관예우의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노 의원은 "전관 예우 폐해를 막기 위해 장·차관급 이상 전관은 개업 자체를, 이하 직급 전관은 일정 기간 형사사건 수임을 금지해야 하고, 수원·서울북부·대구·의정부지법은 '전관예우 특별관리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퇴직한 영장전담 판사 출신들이 모두 지방법원별 수임랭킹 10위 안에 든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노 의원은 "구속영장 심사를 담당한 영장 전담 판사가 퇴직후 구속 사건을 대량 수임하는 것은 부도덕한 전관예우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72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