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 최초로 최고경영자(CEO) 공개 모집에 나선 대우증권의 차기 사장 인선 작업이 막바지에 달했다. 이번 사장 공모를 지켜본 업계 안팎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역시나"란 반응이다. 공개 모집을 표방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전 내정에 의한 '낙하한 인사'라는 사실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당초 대우증권 사장 공모는 지난 3년간 뛰어난 경영성과를 올린 손복조 현 사장의 연임 가능성이 점쳐지며 싱겁게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대우증권의 대주주인 산업은행의 후광을 업은 권성철 한국벤처투자 사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사장이 산업은행 김창록 총재와 고등학교(부산고) 선후배 사이라는 점이 이번 인선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후문이다. 채권단 관리 기업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만큼 낙하산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당초 예상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이에 대해 산업은행은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CEO 공모에 나선 것일 뿐이다"며 "(CEO 선임과 관련해)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업계 안팎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5명으로 구성된 사장추천위원회는 예정대로 최종 후보를 오는 8일 이사회에 추천할 것으로 보인다.
투명성 높인다더니 공모과정은 비공개?
이를 바라보는 증권가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업계 선두주자인 대우증권이 CEO 인선 내홍에 휩싸여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을 경우 자칫 증권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추위의 구성 과정이나 위원 명단, 심사 기준 등 일체의 과정이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공모 과정을 공개할 경우 과열경쟁을 부추기고 위원회의 활동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오히려 이 점이 의혹을 더 키운 셈이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곳은 대우증권 노동조합. 대우증권 노조는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공정하고 투명한 사장 선임을 위해 공모 방식을 선택했지만 오히려 특정인을 선임하기 위한 요식 절차로 전락했다"며 재공모를 주장하고 있다.
김진혁 대우증권 노조위원장은 "증권사 첫 사장 공모제라는 표면상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산업은행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 사장 후보로 추천되는 것은 또 다른 '낙하산'에 지나지 않는다"며 "탁월한 성과를 올린 경영인을 배제하고 경영능력을 검증받지 않은 사람을 단독추천할 경우 이사회를 원천봉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사장 공모가 지금처럼 진행되면 대우증권 뿐 아니라 대우증권에 투자한 투자자들의 신뢰마저 무너뜨리는 폐해를 낳게 될 것"이라며 "투명성과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사추위 위원들을 새롭게 구성해 사장 공모제를 다시 시행할 것으로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노조의 반발과 함께 회사 내부의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최근 눈부신 실적을 올렸음에도 불구, 외부 인사가 '점령군' 처럼 수장에 앉는 것에 대해 직원들 사이에 '거부 반응' 기류가 형성돼 있는 것.
"증권업계 전체 불신 초래할 것"
대우증권은 손 사장 취임 이후 매년 흑자행진을 이어오다 지난해엔 업계 최고 수준인 47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자기자본도 손 사장 취임 당시 1조원 대에서 현재는 2조1500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최근 대우증권 시가총액은 4조원을 넘어서 손 사장 취임 전인 2004년에 비해 6배 이상 불어났다.
대우증권에서 10년 이상 근무해온 한 중견간부는 "매년 사상 최고의 실적으로 갈아 치우면서 경영능력을 검증받아 대우증권의 '명가재건'에 앞장서 온 이를 제쳐두고 검증되지 않은 외부 인사가 사장 자리에 온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를 바라보는 증권업계 전반의 시선은 더 싸늘하다. 전문분야에 대한 소양과 자질이 검증되지 않은 인사를 '추천서' 하나만으로 업계 리딩 증권사 CEO에 내정한다는 것은 자칫 증권업계 전체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업 직원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 증권사 CEO는 그 어느 자리보다 전문성과 중립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사장공모제가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도입됐다는 의혹을 사지 않도록 자질을 갖춘 인물이 투명하게 선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증권가에서는 최근 증권선물거래소와 증권예탁결제원 감사 선임 때 낙하산 인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둘 모두 당초 거론됐던 인물이 자질 논란에 휩싸여 감사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경실련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공모제의 취지는 말 그대로 공개적이고 투명한 선발절차를 통해 최고의 적임자를 찾아내자는 것이다"며 "CEO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가 좌우되는 만큼 후보 선정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객관적으로 후보를 선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73404
작성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