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구속영장 실질심사 때 변호사, 검사의 피의자 심문을 없애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7일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변호사, 검사는 묻지는 말고 설명만 하라”는 것인데, 이는 피의자의 변론권과 방어권을 위축시킬 것이란 주장이 나오고 있다. 피의자 인권을 강화하겠다는 개정 형사소송법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게다가 ‘영장실질심사로 인한 과중한 업무를 피해보려는 법원의 속내도 작용했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법원에 대한 비난도 일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25일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될 개정 형사소송법에 맞게 형사소송규칙을 개정해 입법예고했다.
법원은 구속영장 실질심사 관련 규칙을 “검사와 변호인은 판사의 심문이 끝난 후에 판사의 허가를 얻어 피의자를 ‘심문’할 수 있다”에서 “검사와 변호인은 판사의 심문이 끝난 뒤 의견을 ‘진술’할 수 있다”로 바꿨다. 심문은 판사만 하고 검사와 변호인은 심문 없이 의견을 구두로 진술하거나 의견서를 제출하라는 것이다.
법원은 “현재는 영장 실질심사는 사실상 본안 재판처럼 운영되고 있다”며 “구속의 필요성을 따져야 할 자리가 마치 유·무죄를 다투는 본안재판처럼 운영되는 것은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의 속내는 조서작성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란 분석이 나온다. 개정 형사소송법은 공판에서 조서를 작성하는 것처럼 영장심문조서를 작성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은 심사 당일 작성한 조서를 피의자에게 보여주고 동의한다는 뜻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영장실질심사는 몇시간씩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피의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데다 법원의 영장발부 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검찰이 그만큼 판사를 설득하는데 공을 들이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안기부 X파일 사건’ 당시, 임동원·신건 전 국정원장의 실질심사는 5시간40분간 진행됐다.
일반 사건도 검찰과 피의자간 대립이 첨예한 경우 1~2시간을 넘기는 것은 예사다. 영장실질심사 시간이 길어지면 법원의 조서 작성 부담도 엄청 커지는 것을 의미한다.
법원의 이같은 방침에 검찰과 변호사들은 불만스러워하고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하창우 회장은 “피의자 입장에서 피의자를 적극 옹호하는 심문을 판사가 할 수 있겠느냐”며 “피의자 권리가 침해될 소지가 있는 법원 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영장심사 국선변호를 하고 있는 이윤철 변호사는 “변호인의 의견만 간단히 진술하거나 의견서만 낼 경우 충실한 심문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변호사의 ‘반대 심문’ 자체가 하나의 법률서비스인데 이를 제한하면 피의자의 권리가 제한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법무부도 최근 대법원의 개정안에 대해 ‘종전 규정대로 심문을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보낸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최창영 법원행정처 형사정책심의관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다르게 생각할 여지는 있다고 본다”며 “각계 의견을 받아 수용할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은 수정작업을 거친 뒤 9월말쯤 대법관 회의에서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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