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제가 광주 교도소에서 나와 탈북자사무실을 갔습니다. 선생님을 만나 뵙기 위해 간 것이 아니라 거기에 가면 희망이 있다고 해서 갔었습니다.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 앉아 있는데 멀리에서 황선생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황선생님을 직접 뵌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용안을 뵙고도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국정원의 감시가 눈에 보일만큼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멀리서 저를 보시더니 제게 쏜살 같이 달려와 저를 끌어 안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방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제 손을 어루만져 주시며 저를 애국자라 하셨습니다. 감격스러웠습니다.

장면을 잠깐 바꾸겠습니다. 역시 2003년 6월경이었습니다. 삼각지 육군회관에서 선배 장군들이 주최하는 어느 친목모임에 제가 끼었습니다. 그 자리에 백선엽 장군께서 나오셨습니다. 박경석 장군이 예비역 장군들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저를 소개했습니다. 그때 백선엽 장군의 눈빛이 빛났습니다. “잠깐, 저기 저분이 지만원 박사요?” 했습니다. 박경석 장군이 “예 제가 가장 사랑하는 지만원 박사입니다”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백선엽 대장께서 갑자기 일어서시더니, 제게 허리를 90도 굽히셨습니다. “지박사님, 당신을 존경합니다. 지박사님의 5.18 시각에 대해 저는 100% 동감입니다. 그런데 저는 용기가 없었고, 지박사님은 용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존경합니다.” 그러시더니 또 한 번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셨습니다.

저는 황당했습니다.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제 얼굴이 굳어지고 멍청했겠지요. 분위기가 얼어붙었습니다. 헛기침들을 하면서 냅킨을 둘렀습니다. 박경석 장군이 제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 “지박사, 저 분은 영웅이야, 당신은 영웅으로부터 인사를 받은 거야. 나 같은 사람이 하는 농담이 아니란 말이야, 이걸 분명히 알아야 해. 나도 놀랬어. 이건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 지박사 정신 차려”

황선생님도, 백선엽 대장님도 저를 용기 있는 애국자라 하셨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6.25기념사업을 하고 계시는 백선엽 대장님께 수일 내에 인사를 하러 가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황선생님께는 곧 가서 뵙겠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가겠습니다. 가기 전에 황선생님께 간절히 부탁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수사기록 18만 페이지와 수많은 남한 자료들을 섭렵하여 “수사기록으로 본 12.12와 5.18”이라는 역사책을 썼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탈북 국민들이 진솔하고 용감한 수기를 썼습니다. 여기에는 한결같이 5.18에 북한특수군, 특히 살인기계와 심리전에 훈련된 초특급의 특수부대가 와서 온갖 모략질을 다하고 광주시민을 학살했다는 증언들이 나옵니다. 이쯤 되면 황선생님의 확실한 말씀이 계셔야 할 것으로 봅니다. 물론 황선생님께서는 2003년 1월 저를 만났을 때 “5.18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것은 상식이야요” 이렇게 말씀 하셨고, 당시 월간조선 여기자도 제게 “5.18에 북한 특수군이 왔다는 것은 탈북자들의 상식이던데요.”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귓속 말들이 아니라 공개적으로 5.18에의 북한개입에 대해 크신 말씀을 해주셔야 할 것으로 봅니다. 그 후에는 즉각 선생님을 찾아뵙고 선생님을 포옹하겠습니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황선생님께서 솔직한 말씀을 하시면 선생님을 추종하는 남한 측 인사가 일시 어려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저하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가시는 길은 공적인 길이지 사적인 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압니다. 저 역시 사적인 길을 걷는다면 저는 벌써 아버지 같은 황선생님 곁에서 매일 매일을 보냈을 것입니다. 부디 5.18과 북한의 관계에 대해 말씀 해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신속히 말씀해주시면 제가 지금 받고 있는 재판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루시면 미루시는 만큼 선생님과 선생님을 따르는 남한측 인사들이 불신을 받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막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돌아가는 정서가 많이 아니 혁명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10.20.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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