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이스-로마, 인도, 중국 등에는 4성 계급 같은 구도와 함께 우연의 일치인지 그 공통점 내지 유사점인지 몰라도 군인이 정치를 담당하는 것 같은 얘기가 나온다.

반면, 학자가 정치를 맡는다는 말은 없고, 종교ㆍ제사를 맡은 계층이나 사람을 거의 군주와 동일시한다.

왜 정치에 학자는 없고 군인은 있을까? 이상하지 않나?

그것은 바로, 학자 자체가 군인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근세 조선시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학문하는 사람, 농사짓는 사람, 물품 만드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순으로 신분을 계층화하여 신분체계처럼 사용하였는데, 특히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장사치ㆍ상놈’ 같은 호칭을 붙이기까지 할 정도로 천시하였으며, 학문하는 사람은 벼슬의 유무에 관계없이 대단한 존재로 여겨줬으며, 거기에는 청빈(淸貧)이라는 해괴한 신조까지 붙여줬다.

그러나,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용어는 공자가 태어나기 수백 년 전부터 존재하던 용어였고, 근세 일본의 에도시대에도 통용되던 제도였는데, 그 의미가 우리의 조선과는 너무나 다른데서 경악을 느끼게 한다.

왜냐하면, 사농공상(士農工商)중 사(士)에 해당하는 사람을 중국ㆍ일본에서는 무사(武士)로 취급하더란 거다.

그들이 이상한 건가, 우리가 잘못된 건가?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 사(士)를 무사(武士)로 할 경우, 사농공상이란 말은 “국가동원체계”를 의미하며,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한 시스템적 요체라는 것이다.

반면, 사농공상(士農工商) 중에 사(士)를 문사(文士, 실체적 명칭이라기보다는 무사에 대비시킨 조어일 가능성이 큼)일 경우, 사농공상이란 말은 신분적 지배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도구라는 것이다.

즉, 본래 실용과 공정을 중시하는 무사적 패도주의였던 사농공상(士農工商)은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명분과 청빈을 중시하는 문사적 왕도주의로 변질ㆍ적용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실용적 노동을 싫어하는 얌체근성과 야성적 패기가 없는 비겁성에 물든 문사들의 교묘한 왜곡이라고 봐야 한다.

왜 이렇게 해석을 내리는지 근거를 들어볼까?

고대의 전차병이라는 것이 있다. 말 뒤에다 수레를 붙여 전투에 투입하는 것 말이다.

재미있는 것은 전차병이 기마병보다 먼저 등장했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이집트 고대유적 벽화를 보더라도 전차병은 있어도 기마병은 없다.

왜냐하면 말등에 올라탈 때 발을 거는 발걸이(등자:鐙子, stirrup)는 고대에 없었고, 중세이후에 등장하였기 때문인데, 등자 없이는 말등에서 균형 잡는데 엄청난 다리 힘이 필요하고 무기를 사용하기 곤란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마병은 어릴 때부터 말을 타지 않고는 거의 불가능하였기에 고대엔 일반 농경민족이 거느릴 수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장기판을 보라, 수레 차(車)는 바로 전차라는 것이다.

그리고, 군인을 뜻하는 군(軍)이라는 말도 알고 보면 투구를 쓰고 전차를 탄 사람을 뜻한다.

더욱 파고들면 물건을 운반하는 운(運)자에도 군(軍)이 들어간다.

바로 여기 운(運)자에서는 두 가지를 읽을 수 있다.

첫째, 문자가 군사암호에서 출발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차(車), 군(軍), 운(運)자의 형성순서를 보라.

군사암호였으므로 일반백성들이 알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차차 그 실용성 때문에 대중화되었을 것이라는 거다.

둘째, 고대에 상인(商人)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부에 물자를 대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운(運)자와 대비시켜보면, 상인은 국가동원체계에 있어서 보급품운송을 담당하는 자가 된다.

결국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말이 “국가동원체계”를 의미함이 명백함을 추측할 수 있는 단서가 운(運)자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사라는 말은 있어도 문사라는 말은 없다.

문(文) 그 자체가 무(武)의 도구요, 무(武)의 일부분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곁가지였던 문사라는 거짓계급을 만들어 본줄기였던 무사를 예외적 아류로 취급하여, 애시당초 국가동원체계를 의미하였던 사농공상(士農工商)을 신분지배체제로 왜곡 적용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볼 일이다.

동작, 강릉, 양양, 평택, 여산, 동래, 사천...심지어 한강(漢江)까지 모두 소중화(小中化)에 충실한 지명이다.

그런데, 사농공상(士農工商)만큼은 왜 중화적 의미를 따르지 않고 엽전적으로 왜곡하였을까?

지금도 그런 말장난이 없을까?

있다. 바로 ‘좌우구도’를 ‘보혁구도’로 떠벌이는 상징조작 용어장난이다.

용어장난으로 인하여 인식의 혼란을 심어준 것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진보/보수라는 용어구도일 것이다.

‘빨갱이’, ‘좌익’이라고 하면 쉽게 알아들을 말을 굳이 ‘진보’라고 하여 선각자로 오인하게 할 위장막을 드리우고, 애국우익에겐 일부러 케케묵은 부류로 낙인찍히도록 ‘보수’라는 굴레를 덮어씌웠는데, 웃기는 건 새누리당에서 “보수를 혁신하자”는 식으로 자신의 실체가 상징조작 된 용어혼란전술에 그대로 말려든 짓을 하고 있다는 거다.

심지어 종편TV를 비롯한 언론에서도 용어구도에 따른 본질조작을 사실로 착각하여 조작된 상징의 늪에서 해법을 찾느라고 남 가르치는 소리 지껄여대는 패널들을 보면 한대 패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의미 왜곡으로 비열한 문약의 늪에서 천년간 허우적거린 우리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종북좌익에게 ‘진보’라는 높임말 써주고 애국우익에겐 ‘보수’라고 비하하는 자멸적 용어구도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보수라는 말 집어치우고, ‘애국세력’, ‘우파단체’라고 한다고 누가 잡아가기라도 하는가. 왜 스스로 비하하는가.

그리고, 빨갱이란 말 쓰는 게 부담스럽거든 좌익ㆍ좌파 식으로 비교적 알아듣기 쉬운 말로 좀 떠들자는 거다. <끝>

<부추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