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기업비리 > 단군 이래 최대의 다단계 사기가 판치는구나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 4524000000000원.

무슨 수치일까? 이것은 검찰이 지난 16일 재판부에 밝힌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의 '사기금액'이다.

검찰은 애초 사기금액을 9800억원으로 적시했다가 추가수사를 통해 4조5240억원으로 수정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그래서 "단군 이래 최대의 다단계 사기사건"이라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 주수도 제이유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국정원 문건.

국정원 문건을 다시 주목하는 이유

검찰은 지난 7월 26일 경기도 이천에서 주 회장을 검거한 뒤 8월 초 주 회장을 사기·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그리고 최근까지 네 차례의 공판이 열렸다.

현재까지 검찰은 주 회장의 사기·배임혐의를 밝혀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동안 공판을 지켜본 한 피해자는 "주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 부분은 검찰도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다"며 "많은 사람들이 걸려있고 제일 예민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기·배임혐의와 함께 주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을 반드시 짚고 가야 한다. 이를 제대로 밝혀내지 않는다면 다단계 사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기자는 주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한 '국정원 문건'을 다시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정원은 공식문건을 통해 주 회장이 20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그 중 100억원을 정·관계 로비자금으로 뿌렸다고 주장했다(딸림기사 참조).

한 때 주 회장과 가까웠던 한 인사도 "주 회장은 경영 근간을 로비에 두고 마구잡이 금전 살포로 자기 영역을 구축했다"며 "경영보호라는 최우선 과제를 로비에 의존한 전형적인 로비경영의 선구자"라고 평가했다.

기자가 입수한 국정원 문건에는 먼저 주 회장의 비자금 규모가 언급돼 있다. 즉 "한○○ 고문·정○○ 총경리·최○○ 이사·홍○○ 팀장 등을 통해 2000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주 회장이 2000여억원의 비자금을 차명계좌(450여억원)나 일부 사채업자들(550억원)를 통해 관리하는 한편, 북경·필리핀 법인 등을 통해 해외로 밀반출(100여억원)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특히 "검·경·정치권 등 사회지도층 로비자금(으로) 활용"한 금액이 무려 100여억원에 이른다고 적시했다.

이어 국정원은 '정·관계 대상 금품 살포'라는 항목에서 주 회장이 어떻게 정·관계에 돈을 뿌렸는지를 대체로 상세하게 기술했다. 국정원은 "주 회장은 정치권 인사들이 정치자금 헌금을 요구할 경우 보험을 든다는 차원에서 과감하게 자금(을) 지원"했다며 이렇게 적시했다.

- 다단계업계에 대한 검·경의 내·수사나 공정위 등의 조사에 대비, 무마비 등으로 금품 전달
- 지사 개설·사업제휴 등 계기시마다 사례를 핑계로 관계기관 인사들에게도 뇌물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비호세력을 구축

또 국정원은 주 회장이 "중소기업체들과 납품계약시 보험성격용으로 검·경 또는 공정위 등 관련기관 고위인사의 추천(을) 요구"하고 "자신을 사회저명인사로 포장하기 위해 각종 문화행사에 자금을 뿌리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인맥(을) 확대"했다고 밝혔다.

▲ 시중에 재편집돼 나돌아 다니고 있는 '주수도 로비리스트' 중 하나. 국정원은 문건에서 "여당 의원은 물론 공정위 직원, 검·경 관계자 등 뇌물 수수자가 워낙 많아 그대로 모두 드러나면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로비의혹 핵심인물 한○○씨 주목해야

특히 국정원은 문건에서 주 회장의 로비의혹과 관련 몇몇 유력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여기에는 이○○ 의원과 이○○ 검사, 김○○ 전 지검장 등이 언급돼 있다. 검찰에서 주 회장의 기업인수와 자금출처를 추적하자 주 회장이 이들을 동원해 내사를 중단시켰다는 것이 국정원의 주장이다.

국정원은 "주 회장 측근들에 따르면 주 회장이 부도와 구속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 정·관계 등에 뿌린 금품 살포 리스트 등 승부수로 활용할 자료 작성에 착수하였다"며 "여당 의원은 물론 공정위 직원, 검·경 관계자 등 뇌물수수자가 워낙 많아 그대로 모두 드러나면 그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국정원은 "최근 '그룹 공중분해설'이 끊임없이 제기, 관계기관의 관심이 높아지자 푼돈 지급 용처까지 기록하는 등 치밀하게 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로비의혹과 관련, 주 회장이 로비를 벌였다는 명단(일명 '주수도 리스트')이 시중에 나돌아 다니고 있다. 그 중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2쪽짜리 명단(재편집된 리스트)에는 경찰·공정거래위·검찰·법원쪽 인사들(60여명)이 적시돼 있다.

특히 <시사저널>이 자체 추적한 결과에 따르면, 주 회장의 로비명단에는 열린우리당·한나라당·민주당 등 40여명, 경찰쪽 60여명, 법조계 10여명, 언론계 간부급 20여명 등이 망라돼 있다고 한다. 이 '원본 명단'은 국정원에서 입수해 앞서 언급한 '공식문건'과 함께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국정원은 "사회지도층 인사 가족들을 회원으로 가입시켜 일반회원과 수당기간 차등 등 특혜를 베풀어 방패막이로 활용"했다며 "사회지도층 인사 가족 및 친·인척들은 대부분 가·차명을 이용, 신분을 위장하고 있으며 주변의 동원 가능한 자금을 끌어모아 올인하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가족들이 회원으로 가입했다는 청와대 비서실·경호실 인사들의 실명까지 적시돼 있다.

특히 국정원 문건에 언급된 주 회장의 측근 중에서 눈여겨 봐야 할 인사가 있다. 국정원이 비자금 관리의 핵심인물로 지목한 한아무개 고문이다. 물론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그는 정·관계 로비의혹과 관련해서도 주목받으며 최근 검찰로부터 소환조사까지 받았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5월 서경석 목사가 주 회장으로부터 4억6000만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한 고문이 서 목사에게 2000만원대의 승용차를 선물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제이유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국정원 문건에 기술된 로비의혹은 사실일 가능성이 무척 크다"며 "주 회장은 한 고문을 통해 정계, 시민단체 실력자들을 관리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주 회장은 언론대책반을 가동시켰고 이전에는 연아무개 이사를 통해 언론과 정·관계를 관리했고, 서아무개 전 의원을 통해 자문위원회를 만들어 전직 고위 관료들을 관리했다"며 "이아무개 이사 등을 통해 경찰을 관리했고, 공정위·검찰의 경우는 비밀인맥을 통해 철저하게 관리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경고음' 울렸지만 청와대·검찰은?

▲ 2005년 4월 최고경영자와의 만찬장에서 사업자들과 함께 한 주수도 회장.

국정원은 주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은 물론 얼마 전까지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바다이야기'의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하는 보고서를 지난해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기자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그 두가지 사안에 대해서만은 분명히 '경고음'을 울렸다.

그런데 최근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국정원의 한 고위간부를 만나 앞서 언급한 '국정원 문건'을 일부 언론에 유출한 직원을 '국정원법 위반'으로 징계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심지어 국정원 문건 유출자를 연말 인사에 포함시킬 것이란 얘기까지 들린다. 사실이라면 이는 본질을 외면한 매우 부적절한 처사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 구속 중인 주 회장은 '옥중경영'을 선언하고 여전히 다단계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검찰 등이 주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다단계 피해자들은 계속 양산될 수밖에 없다.

청와대도 수사기관도 정도(正道)를 걸어야 '주수도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727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