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인들이 공굴박스 뜯어먹고 사는게 쉬운게 아닌것처럼.
농사짓는것도 쉬운게 아니다.
나는
뼈속까지 농부셨던 아부지 영향으로, 그리고 엄했던 아부지를 따라 초딩학교 들어가기전부터 농사일을 배웠지.
물려받은것 하나 없이 무일푼으로 시작하셨던 아버지의 일생은
그야 말로 신산스러움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하지.
워낙 없이 사셔서 그 누구보다 수십배로 부지런하셔야 했던 아버지.
머리는 똑똑하셨지만, 배운게 없으셨지만, 천성은 농부셨지.
아버지가 내게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니 눔이 아무리 잘나서 크게 성공해서 대통령이 될지라도, 농사는 지어야 한다.
사람은 정직하게 땀을 흘려서 먹고 살아야 한다."
초딩도 들어가지전부터, 밖에 나가서 농사일을 거들었던, 초딩이 뭘 할줄 아냐고?
그때는 무조건 했어야했다. 나이가 초딩만도 안된 나이부터 했어도, 그 나이값의 수배를 하지 않으면 불호령이 떨어지곤 해서-------
난 싫었다
뜨거운 햇빛, 노동의 고단함, 뼈빠지게 일해봐야 넉넉해지지 않는 살림등
늘 가난하게 살았다.
"난 저리 살지 않을꺼야" 라고 어린날부터 각오했지만, 아부지 위암으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으시고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병원에 마지막으로 실려가실때까지도 농사일을 하셨던 아버지.
그런 아부지가 너무 안쓰럽고 힘들어보여서, 아부지 살아계신날까지는 내가 해드려야지하고 농사일을 하다보니 내나이도 어느덧 훌쩍 먹어있더라.
그렇게 초딩들어가기전부터 아부지 돌아가시는 날까지 수십년을 농사를 했지.
대학학력고사가 있던 날이라도 그 전주에 농사일이 있으면 농사일을 했지, 인문계 나와서 대학가는 공부를 하면 남들은 공부하라고 척척척 밀어줘도, 나는 빨간날 주말 어김없이 그날은 학교를 빠지고, 들에 나가서 이앙기를 직접끌고 다니면서 모를 심고, 모짓기 농약 밭고랑, 비늘씌우기, 김매기, 억척스럽게 일할수 밖에 없었지.
농사
그것도 쉬운게 아니다.
노후를 어느정도 다 이루어놓고 먹고 사는것 다 해놓고.
느긋하게 하는 농사는 낭만스럽긴 한데, 그 농사가 먹고 사는 직업이면, 농사 참 힘들지.
그래서 나는 어렸을때 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
농사를 안짓게 되는 순간에 오면 다시는 농사는 가까이도 하지 않겠다고
그래서 빠른 시일에 노후를 완전히 준비다 해놔야되지 않겠느냐고..
그래야 노후에 뭘해도 낭만스럽게 살게 되지 않겠느냐고..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일을 안하면 빨리 죽는다고 하셨지만, 나와는 생각이 완전 달랐다.
느긋하게 여유있게 그리고 운동하면서 자기하고 싶은것 하면서 사는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하루하루를
꿈을 쌓듯이 쌓아간다.
근데
나도, 웃긴게
재작년에 논을 복토해서 나무를 1500그루정도 심어놨다. 농사에서 손을뗀지 십여년만이다.
뭐 하다보니 농부가 되었네.
ㅋ
나무농사는 힘들지 않은 일이라서 그냥 소일거리지만, 아마도 이년후에는 또 1500그루정도 또 심을것 같다...
어쩠거나.
농부일은 쉬운게 아니다.
농부뿐이 아니라 세상 그 어떤것이라도 쉬운게 없다.
그게 먹고사는 직업이 된다면 말이다.
다만,
느긋하고 여유로움을 마련해놓고 하는 ------직업이라면 그 자체가 취미이지 삶의 행복의 근간이 되겠지.
같은 교사라도.
어떤사람은 한달벌어서 한달 먹고 사는 그냥 직업이 되는 사람도 있고(경제적으로 어려운사람)
어떤 사람은 아이들 가르치는게 그냥 취미생활이 되서 그 자체가 재미난 일이 되는(경제가 부유한 사람)
직업은 같지만 그 둘의 삶자체가 완전히 다르듯이...
암튼
세상 쉬운게 없다.
긴 인생--그게 공굴박스(아파트)든 농사를 짓든 자기가 갈길은 자기가 가는길.
남들 아파트 가지고 있다고 그것을 비난할 이유가 없을것이다, 그 공굴박스가 그들에게는 소중한 자산이고 가족들의 꿈과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는것기도 하니 말이다.
힘든 농사를 짓는다고 농사따위나 지으라고 비난할 필요도 없는것이다.
다 알고보면.
다들 자신들의 꿈을 위해 한발한발 나아가는것이고, 꿈을 쫓다보니 실패도 하고 그러는거지...
느긋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자..
농부는 농부다울때, 시인은 시인다울때, 교사는 교사다울때, 자신의 직분에 정직하게 사는게 가장 아름다운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