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철한 사회의식을 가지고 순수한 미(美)를 추구하며 파란만장한 생을 살다가 34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영국 여류작가 캐서린 맨스필드가 쓴 ‘가든파티’는 그것이 지닌 순수한 미학과 보편적 진실 때문에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의 아름다움은, 죽음의 그림자가 삶에 보이지 않게 드리워지듯, 찬란한 아침 햇빛과 저녁의 어둠이 교차하는 기하학적인 구도가 예측할 수 없는 비극적 삶의 무드와 신비를 투명하게 불러일으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순진무구한 주인공 소녀가 세상을 향해 보이는 인간적인 연민과 그것을 통해 작가가 나타내는 비판적 사회의식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초여름의 어느 날, 주인공 로라는 노동자들이 푸른 잔디밭 위에서 차일을 치고 밴드를 옮기며 파티를 준비하는 것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빈촌인 아랫 마을의 스카트라는 젊은 짐 마차꾼이 교통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파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끝내, 로라는 한 쪽에선 사람이 죽었는데도 파티를 계속한다는 것은 비정하다면서 사치스러운 파티를 떠난다.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시신(屍身)이 안치되어 있는 어둡고 누추한 집을 찾은 로라는 마치 잠을 자듯 평화롭게 누워 있는 짐 마차꾼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난 후, 흐느끼며 가난한 삶의 비극적인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지금 우리는 안과 밖이 다른 모순적인 사회 구조 속에 살고 있다. 한쪽에서는 국민 소득 1만달러에 만족하듯 파업을 일삼고, 다른 쪽에서는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는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면서 골프를 하고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뒤안길에는 실직으로 인한 가난과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권에서는 민생 대책에 고심하기보다는 부패한 정치자금에 대한 지루한 공방이나 허울 좋은 햇볕정책의 이름 아래 금강산 ‘관광사업’를 벌이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다.
지난 주, 서울 잠실의 한 지하 공사장에서는 17세 난 아들이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를 도와 본드를 칠하다가 질식해서 부자(父子)가 함께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또, 생활고를 못 이긴 30대 주부가 “죽기 싫다”고 절규하는 일곱 살, 다섯 살 난 어린 딸을 14층 아파트 창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자신도 아들을 품에 안고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은 참혹한 사건이 있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실직 후 몇 달째 가출한 남편은 아직까지도 숨어서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그들 모두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스스로 저지른 죄를 어떠한 이유로도 면하기 어렵다. 그들은 실직한 후 카드 빚으로 살기보다는 힘겨운 노동을 해서라도 자신이 낳은 아이들을 성실하게 키워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었다. 신(神)에 의해서 주어진 생명의 존엄은 어떠한 경우라도 인간이 지켜야할 가장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인간은 자기의 감옥 문을 두드릴 권리가 없는 수인(囚人)이며… 인간은 신이 소환할 때까지 기다리며 스스로 생명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이처럼 신이 부여한 생(生)의 존엄성을 유기한 이들 부부의 파괴적인 행위는 분명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냉혹한 우리 사회 또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위정자들은 우리 사회를 결속력 있는 공동체라고 애써 말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을 굳게 잠그고 아파트 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옆집이나 지하실 방에서 누가 죽어 가는지 전혀 무관심하다.
정부와 집권 여당은 일자리를 창출하며 파이를 크게 만드는 일보다 분배에 치중하며 최저 생활비를 올려 빈민층을 없앴다고 홍보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 주에 있은 두 죽음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만일 지금처럼 사회 안전망이 상실되어 직장을 잃은 가난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벼랑 끝에서 몸을 던지게 되면, 그것은 곧 돌이킬 수 없는 사회 문제로 확대될 것이다.
정치권은 연일 정치자금과 검은돈 문제로 이전투구(泥田鬪狗)를 벌이고, 집권당 주류는 신당을 만들기 위해 잔치판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우리 사회의 그늘 진 곳에서는 또 다른 어느 누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맨스필드의 ‘가든파티’가 그리고 있는 사회상의 모습과 주인공 로라의 사랑이 새삼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 이태동 서강대 영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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