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몸 박정희'를 읽고
첫 번째 박정희의 성웅기획, 두 번째 천황주의자 박정희에 이은 세 번째 이야기다.
사람들이 박정희의 일생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으로 공산주의자로의 변신을 꼽고 있다. 제국주의자이자 반공주의자인 그는 1946년 전반기까지는 공산주의 서적을 읽은 적도 공산주의 운동 근처에 얼씬거린 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과 1~2년 사이에 남조선노동당 조직을 꿰는 거물 공산주의자로 변신했던 사실은 사람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람들은 형 박상희의 영향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최 교수는 아니라고 단언한다. 박정희는 형 박상희를 존경하는 듯 말했지만, 두 사람은 사사건건 충돌했고, 박정희는 한번도 형의 말을 존중한 적이 없다고 한다. 민족운동가였던 박상희 역시 민족반역자 박정희를 인간 이하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박상희는 1946년 10월 5일 '대구폭동'에 휘말려 경찰의 총을 맞고 숨을 거두었는데, 박정희는 형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박상희의 '조선일보' '동아일보' 선산지국장 겸 주재기자 경력으로 볼 때 조선공산당의 조직원이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의 다른 경력에 비춰볼 때도 그의 정치노선은 민족주의 좌파에 가깝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박상희 영향'은 박정희 숭배자들이 꾸민 터무니없는 조작이며, 박정희가 '형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산당이 되었다는 변명을 만들어내기 위한 술수라는 것이다.
잠깐 미 군정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그때 군대 요직은 대부분 만주군관학교와 박정희의 일본 육사 선배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최교수는 이렇게 개탄한다. "내가 알기로 그 많은 일본군 장교 출신 중에 단 한 사람도 공개적으로 반성하거나 사과한 사람이 없었다. '해방'이 되었건만 배반도 반역도 처벌받지 않았다. 조선국방경비대에는 민족도 정의도 없었다... 민족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야할 민족반역자들이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민족의 군대'를 차지해버렸다. '천황폐하'의 제국군인들은 반성이나 사과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떵떵거리며 무시무시한 지배집단으로 군림했다"
이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군대였기 때문에 수많은 양민학살,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30만 보도연맹 학살, 무기구입 부정에서부터 취사장 부정에 이르는 무차별 부패, 구타 없이는 유지될 수도 없는 폭력질서, 정치군인들이 농락하는 정치군대 등의 일그러진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된 역사의 꼭대기에는 박정희가 있었다는 것이다.
최상천 교수는 박정희의 남조선노동당 경력은 워낙 오랜 세월 '1급 비밀'이다 보니 자료도 증언도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하게 밝힐 길이 없다고 말한다.
박정희의 변신을 밝히기 위해서는 위와 같은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훑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군 정보국 보고서에서 지적하듯이 '해방' 당시 한반도는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고 한다. 일제 말기 우익 인사들은 대부분 일본의 앞잡이로 전락했기 때문에 해방 조국에서는 말발이 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이렇게 얘기한다. "박정희는 절대 대세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일생을 통해 단 한 번도 '정의로운 소수'에 참여하거나 동조한 적이 없었다. 사회적 약자의 편을 든 적도 없었다. 대세에 편승하더라도 그냥 끼여드는 정도가 아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핵심부에 들어갔다"
충성혈서를 쓰고 일본의 사관학교에 들어가 '조센징 토벌군'으로 있다가 해방정국에서는 광복군가까지 지어가면서 광복군 행세를 하고, 군정시기에는 건국운동은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미군 사령관이 지휘하는 조선국방경비대 장교로 변신했던 그의 이력을 볼 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가 대세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읽어냈다는 것이다. 이런 정세판단이 끝나자 박정희는 '우익군대'의 좌익장교로 변신해서 불과 1년만에 남조선노동당 최고간부로 수직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대세(?)가 어떻게 바뀌었을까?
1948년 10월 20일 새벽 여수 주둔 14연대가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14연대는 제주 4.3항쟁을 진압하기 위해 출발을 앞두고 있던 부대였는데, 남조선노동당의 하급간부들이 대책 없이 일으킨 한탕주의 폭동이었다는 것이다.
최교수에 따르면 역사는 가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물줄기가 바뀌기도 하는데, 이 돌발폭동이 그런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여순반란사건'으로 남조선노동당은 회복불능의 타격을 입는다. 대책 없는 폭동으로 민심을 얻는데 실패하고, 미군과 정부의 압박작전으로 더 이상 대중운동을 펼치지 못하고, 역사적 퇴장을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이때 반란의 토벌군 작전장교가 박정희였다고 한다. 그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작전장교 업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빨갱이'란 걸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그 후 군 내부에서는 빨갱이 색출작전이 전군으로 번진다. 수많은 군인들이 고문을 당했고, 장교 20여명이 처형되었지만, 박정희는 체포되긴 했지만, 살아남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 당시 숙청작업을 맡았던 육군본부 정보국 특무과 김안일 소령은 이렇게 증언했다고 한다.
"김창룡한테 들었는데 박 소령은 구속되자마자 이런 때가 올 줄 알았다면서 자술서를 쭉 써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는 위급한 때를 대비해서 가슴속에 준비되었던 계획된 배반을 하고 살아남았다. 그가 동료들의 명단을 모두 털어놓으면서 국군의 숙청작업은 당초의 기대를 넘어 찬란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군 수뇌부는 박정희의 숨김없는 조직폭로와 남김 없는 동지배반에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박정희를 도와주기 위한 김창룡의 발상은 흥미롭지 않을 수가 없다.
"수사관들이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갈 때 열 번만 박정희 소령을 앞세우고 동행한다. 만약 박정희가 남로당 세포가 아니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여기에 협력하여 누명을 벗을 것이요. 그가 공산주의자라 하더라도 열 번을 배반하게 만들면 그 세계에서 영원히 추방되어 전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쨌든 박정희는 이 '배신증명작전'에 적극 협조한다. 이에 박정희는 죽음을 모면한다. 거기다가 일본육사 아니면 만주군관학교 출신의 일본제국군인으로 이루어진 군 수뇌부는 5개월 후 박정희에게 육군본부 정보국의 전투정보과 문관으로 복직시켜주게 된다.
"당신은 자기 한 목숨 살기 위해 조직과 부하를 몽땅 팔아 넘기는 것도 모자라 '배신증명'까지 연출하는 '두목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혹시 그런 영화나 소설이라도 본 일이 있던가?"라고 최교수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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