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가 데스크의 일방적인 기사 수정에 항의해 사표를 내고 잠적해 파문이 일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지난 2일 저녁 이아무개 동아일보 청와대 출입기자가 다음날치 가판에 실린 박지원 대통령 비서실장에 관한 기사가 터무니없이 고쳐졌다며 담당 부장에게 항의 사표를 냈다고 전했다.
문제가 된 기사는 지난 3일치 동아일보 5면 머리에 ‘소통령…중통령…대(代)통령’이란 제목으로 실린, 박지원 실장의 `권력독점’을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였다. 이 기사는 “최근 디제이(DJ)의 정치적 입장이 어려워진 데 반비례해 박 실장에겐 더욱 힘과 영향력이 쏠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박 실장이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거의 모든 보고를 장악하고 있고 병풍 수사를 맡은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 1부장 유임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관측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초판 기사를 본 뒤 애초의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다시 고치거나 그러지 않을 거면 내 이름을 빼 달라”고 강하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자는 항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사에 사표를 내고 청와대에도 출입증을 반납한 뒤 자신의 짐을 챙겨 떠났다.
이런 사실을 처음 보도한 <기자협회보>(9월4일치)는 “박 실장의 영향력을 강조하게 위해 `실무자 인사조처'니 `수사를 지시했다'느니 하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등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에 무리가 있었다고 생각된다”는 다른 청와대 출입기자의 `평가’를 전했다. 주간 <미디어오늘>도 “이 기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 기사의 내용과 표현이 데스킹 과정에서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수정·가필되면서 많은 갈등과 고민을 한 것 같다”고 한 또다른 청와대출입기자의 말을 옮겼다.
이와 관련해 동아일보 심규선 정치부장은 “현재 기자의 사표가 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운신의 폭을 제한할 수 있는 발언은 하지 않겠다”며 “단지 기자가 기사 수정 건만 갖고 사표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경택 편집국장도 “정상적이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데스킹 작업을 거쳤던 것으로 안다”며 “사표제출에는 기사뿐 아니라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겠지만 곧 복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당사자인 이 기자는 청와대 기자실을 떠난 뒤 연락을 아예 끊고 있다. <한겨레>가 여러 차례 그에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가 되지는 않았다. 현재 동아일보의 청와대 출입기자 자리는 비어 있는 상태다.
청와대에 출입하고 있는 한 기자는 “이 기자는 평소 열정이 있고 성실해 동료기자들 사이에서 평이 좋았는데 이런 일이 있어 안타깝다”며 “그가 지난해 언론사 세무조사 과정에서 사주 부인의 자살을 정치적 희생으로 추어올리는 동아일보의 비틀린 모습를 보고 ‘동아일보가 침몰되는 느낌이다’라고 말하는 등 회사 분위기에 대해 고민하고 답답해했다”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출신의 한 전직 언론인은 “진정한 언론의 자유란 기자와 논설위원의 자유이지 효율성만 강조하는 언론사의 자유가 아니다”라며 “회사가 한가지 논조를 기자들에게 강요하면 언론인들은 이를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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