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우유부단이 키운 이중 그림자 권력, 우리가 방치하고 조장했다'

- 4년 전 ‘이상득 용퇴’ 주장했던 김용태 의원의 자책 -

지난 7월 3일 이상득 전 부의장이 검찰에 불려가던 날, 서울에는 벼락을 동반한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를 옭아매던 이중 그림자 권력 구조도 붕괴되었다.

만사형통(萬事兄通)의 시작

경선과 대선 과정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당선이 확정된 연후에는 당연히 이 부의장이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라 생각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있으랴. 이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를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인수위는 이상득-이재오-정두언 삼각 체제의 균형점을 찾으면서 나름대로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조각 과정에서 이 부의장의 독주체제가 시작되었다.

곧이어 정국은 조각과 공천 과정을 거치면서 폭발했다. 대통령은 강부자-고소영 내각 시비로 곤경에 처했다. 친박 공천 학살 논란에 휩싸인 집권여당은 박근혜 전 대표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다.

민심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를 기화로 친박계 공천 탈락자들이 줄줄이 탈당했다. 이대로는 총선을 치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상득 퇴진 요구 55인 성명

2008년 3월 21일 공천자들에게 사발통문이 돌았다. “이대로는 다 죽는다. 선거운동을 접고 22일 저녁에 모이자. 민심 이반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 부의장일 수밖에 없었다.

22일 하루 종일 사발통문을 받은 공천자들에게 이 부의장측의 압력 전화가 빗발쳤다. 그 날 밤 여의도에 모인 것은 달랑 나와 정두언, 권택기 공천자 세 명뿐이었다.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마찬가지니 성명 초안은 내가 쓰기로 하고 남은 두 사람이 공천자들에게 전화를 돌리기로 했다.

23일 55명의 서명을 받아 조각 책임에는 이상득, 공천 책임에는 이재오가 책임을 지고 불출마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이 부의장은 포항으로 내려가 공천 사퇴를 거부한 채 농성 체제에 돌입했다. 이재오 의원은 칩거하며 대통령의 의중을 살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은 대통령에게 향했다. 그러나 끝내 청와대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다음 날 이 부의장은 측근들을 내세워 반격하기 시작했다. 계파간 나눠먹기니 제 살 깎아먹기니 하면서 배후에 이재오와 정두언이 있다고 공격했다. 전형적인 물타기였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앞으로 있을 이 부의장의 전형적인 ‘수비 전형’이 되었다.

대통령의 침묵이 계속되었고 후보 등록일이 다가왔다. 55인의 이상득 퇴진 거사는 이렇게 허무하게 무산되었다.

이명박 정부 천추의 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부의장의 오너 권력론

2008년 4월 총선이 끝났다. 예상을 뛰어넘는 집권여당의 승리였다. 선거 직후 나는 몇 사람과 이 부의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선이 끝나고 논공행상이 너무 치우쳤다는 캠프 종사자들의 하소연을 전하는 자리였다.

“회사에서 오래 일해 본 사람은 알거야. 아랫사람들은 세상 천지를 돌아다니며 열심히 일하다 보니 회사를 자기가 세운 것처럼 생각하지. 그런데 오너는 종업원의 차에다 마일리지 기록계를 달아놓는단 말이지. 회사의 주인은 오너 일가이고 종업원은 오너의 감독 하에 열심히 일할 뿐이야. 그리고 오너의 판단에 따라 보상을 기다릴 따름이지.”

국가 경영을 개인 회사 경영에 빗대다니 놀랄 일이었다. 오너 일가라는 말에서 이중 그림자 권력의 실체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무참했다.

정두언의 난(亂)

2008년 6월 8일, 조선일보에 정두언 의원의 인터뷰가 실렸다. 이상득 부의장-유우익 대통령실장-박영준 비서관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당시 정국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고 있었다. 청와대와 정부는 갈피를 못 잡고 대국민 사과에 나서기 바빴다. 이 와중에 박영준 비서관을 중심으로 ‘선진국민연대’가 집권 성과물을 다 빼먹는다는 항간의 소문이 들끓었다.

정 의원에 동조하는 일부 쇄신파 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에 이상득-박영준 라인의 전횡을 막지 못한다면 거세게 타오르는 촛불시위의 불길을 막을 수 없고 임기 1년차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물 건너간다고 의견을 모았다.

상황을 견디지 못한 박영준 비서관이 사표를 냈다. 그러나 쇄신파 의원들은 “박영준 비서관 퇴진으로 사태가 끝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끝장을 보겠다”며 이상득 부의장의 퇴진을 거듭 요구하였다.

당시 나도 “지금 대한민국 국정은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패밀리 비즈니스처럼 되고 있다. 이 부의장은 깨끗하게 국정에서 손을 떼야 하며 필요하다면 해외 체류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이 부의장은 예의 전형적인 수비 전술을 구사했다. 측근 그룹들을 통해 ‘권력에서 낙오한 자들의 치졸한 복수극’이라며 반격했다. 이에 대통령은 당시 안경률 사무총장을 불러 더 이상의 내분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또 다시 이 부의장 측의 물타기식 수비에 쇄신 불길은 사그라들었다.

국정쇄신 요구 7인 성명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급속한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 친이직계 임해규, 정두언, 차명진, 권택기, 김용태, 정태근, 조문환 7인은 “이명박 정부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중단하고, 이 부의장 2선 후퇴, 박희태 당대표 퇴진, 박근혜 전 대표는 전당대회 출마하라”고 요구하였다.

막바로 이 부의장과 담판에 나섰고, 부의장으로부터 “정치 2선으로 후퇴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그러나 그렇게 물러날 이 부의장이 아니었다. 또 다시 이 부의장의 측근 의원들이 나서 내부단결을 해치는 권력투쟁을 중단하라며 ‘7인의 사무라이’를 공격했다. 여기에 친박까지 나서 이 부의장측과 쇄신파의 싸움에 박근혜 대표를 끌어들이지 말라고 공박했다.

이 부의장의 교묘한 물타기에 친박의 수수방관으로 3차 이 부의장 퇴진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이중 그림자 권력 구조는 기사회생했다.

누가 왜 민간인 사찰을 했나?

7인 성명 사태가 벌어진 이후 쇄신파 의원들은 사찰을 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렸다. 게다가 의원 주변이 난데없는 압력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하였다. 그러나 집권여당 특히 친이그룹 내에서는 또다시 쇄신파가 이 부의장을 괴롭히며 분란을 일으킨 것이라고 일축했다.

2010년 7월 정국은 불법 민간인 사찰 문제로 폭발했다. 일부 민간인에 대한 사찰 사실도 폭로되었지만 정두언, 정태근, 남경필 의원의 주변에 대한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사찰 문제가 불거졌다.

언론에서는 2009년 친이직계의 <7인 성명> 이후 이 부의장 문제를 거론해온 쇄신파에 대해 이 부의장측에서 손보기에 나선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쇄신파 의원들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며 진실 규명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담하게도 증거 인멸을 자행했다.

대통령에게 그 어떤 타격이 있었더라도 이 때 뿌리를 뽑았어야 했다. 그러나 증거 인멸과 이에 따르는 관련자들의 입막음 시도 등으로 이명박 정부는 되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도대체 집권여당 안엔 무슨 일이?

도대체 대통령과 집권여당 사람들은 이 부의장의 이중 그림자 권력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던 것일까?

대통령은 형님을 어쩌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아는 바로는 국내 정치의 중요한 국면마다 형님 등 시니어 자문그룹을 불러 상의했다. 그래도 정치의 달인이라 불리던 형님의 조언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바로 이런 대통령의 행태는 친이들의 명백한 오판을 낳았다. 대통령이 믿고 의지하는 이 부의장에게 감히 대든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대통령은 야당과 좌파세력, 심지어 친박으로부터까지 공격을 받는 마당에 이 부의장에 대한 쇄신파의 공격은 내부 분란만 일으킨다고 주장했다.

친박은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대통령과 친이들의 싸움에 끼어들기를 거부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주도하는 이슈에만 끼어들어 대통령과 각을 세워 역사적 알리바이를 수립하면 되었다.

집권세력 누구도 책임 못 면해

김영삼 대통령은 군개혁,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공개 등의 업적에도 아들의 권력 전횡과 환란 위기 자초로 실패한 대통령으로 내몰렸다.

이명박 대통령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조기 극복, 세계질서 재편에 주도적 참여로 대한민국 국격을 올리는 업적을 쌓았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레임덕에 직면했고 급기야 실패한 대통령으로 내몰리는 게 아닌가 싶어 솔직히 나는 두렵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이중 그림자 권력 구조를 막지 못하고 방치하고 조장했던 사람들 중의 하나가 나라는 게 괴롭다.

주체할 수 없는 오만한 형님의 권력욕, 형제간의 우애와 국정의 엄중함을 구분하지 못했던 동생의 우유부단, 정부뿐만 아니라 온갖 곳곳에 촉수를 뻗쳐놓고 사람 장사 돈 장사를 한 서적(鼠賊)들의 분탕질, 좋은 게 좋다 대세에 묻어가기 바빴던 친이들의 비겁함, 너의 실패는 나의 성공이라며 팔짱만 끼고 사태를 즐기던 친박들의 수수방관, 불퇴전의 각오로 끝까지 싸우지 못했던 쇄신파의 용기박약이 빚어냈던 이상득의 이중 그림자 권력.

이상득 이중 그림자 권력. 그것은 불과 몇 년 전이던 前 정권, 前前 정권, 前前前 정권의 실패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한심한 족속들이 빚어낸 한바탕 꿈이었다.

-주간조선 7월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