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 소년은 택시기사를 칼로 난도질해 살해했고, 스물세 살 여성은 친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여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했다. 범인들은 자백했고 대법원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10년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최 아무개씨는 청년이 되어 출소했고 스물세 살 김신혜씨는 3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감옥에 갇혀 있다. 확정판결이 났고 다 끝났다고 여겨지는 사건이다.
하지만 박준영 변호사(40)에게는 시작인 사건들이었다. 그는 대법원에서 확정판결까지 받은 피고인들이 무죄라고 주장한다.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재심을 위해 다른 변론은 접다시피 하며 두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 그가 보기에 두 사건의 피고인들은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으며, 법원은 오심을 했다.
동료 법조인들은 재심을 여는 것도 쉽지 않고, 열리더라도 무죄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말렸다. 그래도 그는 발로 뛰어다니며 증거를 모았고, 10년 전 사건 담당자를 찾아냈다. 자신이 기자가 되다시피 하며 박상규 시민기자와 공동 취재를 진행했고, 포털 다음에 뉴스펀딩으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아직 계란으로 바위를 깨지는 못했지만, 균열은 냈다. 최근 광주고등법원이 택시기사 살인사건으로 확정판결이 나온 최씨 사건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검찰이 대법원에 항고해, 최종 재심 개시 여부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박 변호사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검찰이 잘못을 바로잡는 데 소극적이다'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가 이 사건의 진범으로 확신하는 이는 따로 있다. 진범으로 여기는 이의 공소시효가 8월9일이면 끝난다. 무기수 김신혜씨 사건도 15년 만에 법원이 재심을 할지 말지 심문에 들어갔다.
박준영 변호사는 최근 사무실 방 두 개를 내놓았다. 사정을 얘기하고 고용했던 변호사와 직원들을 떠나보냈다. 수원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에는 이제 직원 한 명만 남았다. 책상 4개에는 재심 관련 서류가 수북이 쌓여 있다.
박 변호사는 '지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나도 가정이 있는 사람인데, 솔직히 언제까지 비슷한 일을 계속할지 잘 모르겠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를 여기까지 끌고 온 이들은 '돈 없고 빽 없는' 억울한 사람들이다.
변호인으로서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는 2007년 수원 노숙자 소녀 살인사건이다.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열다섯 살 소녀가 변사체로 발견됐다. 경찰과 검찰은 당시 20대 노숙자 2명과 가출 청소년 5명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2008년 2월, 2년차 변호사이던 그는 청소년 5명의 국선 변호를 맡았다. 가출 청소년들을 보면서 한때 방황했던 자신을 떠올렸다. 편견을 걷어내고 조서를 읽었다. 직접 사건 현장도 찾았다. 범행 장소인 고등학교만 20여 차례 방문했다.
검찰에 조사 과정이 담긴 영상녹화 기록을 요청했다. '10대 수사에 맞게 적법 절차를 준수했고 전 과정 영상녹화도 했다'라고 자랑하던 검찰이 웬일인지 법정에 영상을 제출하지 않고 버텼다. 박 변호사가 집요하게 재판부에 요청해 영상녹화 기록을 받아냈다. 그 영상에는 검찰이 10대 5명을 회유하고, 이들에게 유리한 진술은 빼는 등 짜깁기 수사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대법원 재판까지 변호를 맡은 박 변호사는 청소년 5명 전부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다. 나아가 그는 공범으로 기소되어 확정판결을 받은 20대 노숙자 정 아무개씨 등의 재심 변호까지 자청했다.
어느 누구도 사건을 의뢰하지 않았지만 그는 제 발로 교도소를 찾아가 정씨를 면회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경찰이 때렸고, 자백하면 크게 처벌하지 않는다고 했다'라는 정씨의 말을 들었다. '내가 변호하겠습니다.' 박 변호사는 스스로 재심 변론을 맡았다. 대법원은 재심에서 정씨에게 무죄판결을 확정했다. 하지만 정씨는 잘못된 수사와 잘못된 판결로 5년간 옥살이를 한 뒤였다.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정씨에게 직접 사과한 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