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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2 (금) 18:21 조선일보 조선일보 기사보기
[기자수첩] `무림 고수` 씨티은행 "파업쯤이야…"
[조선일보 이지훈┃경제부 기자]
“아무래도 노조가 상대를 잘못 택한 것 같습니다.”
한미은행 파업 사태에 대한 A은행장의 짤막한 관전평이다. 노조가
5일 동안 은행 문을 닫아 걸고 파업을 벌이는데도, 대주주인 씨티은
행측이 조바심 내기는커녕 돌부처처럼 뚝심 좋게 버티는 상황을 표
현한 것이다.
국내 금융회사라면 어땠을까? 파업으로 예금 2조원이 빠져나가고,
전산망 마비까지 우려된다면 며칠이나 버틸 수 있었을까? 아마도
“빨리 끝내라”는 정부의 압력 때문에라도 무리한 요구에 변변히 대
꾸조차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을 것이다.
씨티은행의 노조 대응에선 엄청난 내공을 쌓은 ‘무림 고수’의 면모
가 느껴진다. 은행가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한미은행을 인수한 씨티
은행의 실력에 대한 경계 심리가 강했는데, 이번 파업 사태는 이 같
은 심리를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기자는 이번 파업 사태를 계기로 씨티은행의 근무 여건을 취재해 보
았는데, 이를 통해 씨티은행 경쟁력의 비밀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예컨대 세계 최고 은행이란 씨티은행의 명성에 걸맞지 않
게, 서울지점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국내 은행의 60~70% 수준에 불
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억대 연봉자도 있지만 100명이 입사하면
2~3명에게만 차례가 오는 ‘바늘구멍’이라 경쟁이 치열하다.
또 씨티은행은 연장 근무를 억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정규 근무
시간에 열심히 일하면 충분히 마칠 수 있는 일을 왜 담배 피우고 신
문 보느라 미적거리느냐는 것이다. 근무 강도가 국내 은행과 비교
가 안 되게 높을 수밖에 없다.
한미은행 노조가 예상 외로 강경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데는 이처
럼 ‘지독한’ 씨티은행식 경영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다.
정작 문제는 노조보다 국내 경쟁 은행들이다. 씨티은행과 벌일 진
검 승부에서 살아남을 것 같은 국내은행이 별로 눈에 띄지 않기 때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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