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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일생 [ 2 ]

목포상고 시절 단체사진..본관건물 뒤로 멀리 보이는 황폐한 산등성이가 일제의 탄압과 수탈을 말해주는 듯 하다. 당시 사진을 찍었던 장소에서 바라보면, 지금은 아파트와 상가건물들만 보일뿐이다. 역사 교과서를 보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 사업가에서 정치가로**

1945년(乙酉)은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해방된 해이다. 국가적인 경사는 물론이요, 후광 개인으로도 달콤한 신혼살림을 꾸린 행복한 해였다. 후광은 해방을 4개월 앞두고 차용애와 결혼하여 큰아들 홍일과 홍업, 두 아들을 두었다. 큰아들 김홍일은 지금도 의정활동을 하고 있으며 군사독재시절의 후광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거울과도 같은 인물이다.

1945년은 일제(日帝)가 군부독재의 파시즘체재를 구축하여 전쟁으로 성하고 망했던 소화(昭和)20년이다. 백성은 하늘이라고 했던가. 시중에서는 일본이 패할 것이라는 소문이 진즉부터 나돌고 있었다. 전라도 지방의 어느 유명한 도사가, 하늘에서 큰 황소 한마리가 떨어지는 꿈을 꾸었는데, 소화가 망할 것을 예고하는 꿈이라는 그럴듯한 해몽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갔다.

성공한 청년사업가로서, 착실한 가장으로서 행복한 생활을 누리는 것도 잠깐, 신혼이나 다름없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그때 후광은 사업상의 출장 때문에 서울에 있었다. 한강 다리가 끊겨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떻게든 서울을 탈출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일 만에 목포에 도착했으나 곧 인민군 정치 보위부에 연행되어 형무소에서 그해 여름을 보냈다. 1950년 9월, 퇴각하는 인민군들은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처형하기 시작했다. 대략 200명가량의 사람들을 강당에 모이게 하고는 일차적으로 50명을 끌고 나갔다.

후광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천우신조였는지 사람들을 실어 나르던 트럭 운전사가 일부러 차 고장을 내는 바람에 일단 처형을 면할 수 있었다. 그날 밤 여러 사람들과 힘을 합해 탈출을 결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뜻밖에도 동생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그들은 함께 형무소 담을 넘었다. 그 사선을 넘고 나서 바로 해상 방위대에 참가하여 전남지구 부단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공산당의 게릴라 부대를 소탕하는 것이 방위대의 임무였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가운데 휴전회담이 진행되던 1952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은 영남과 호남지방에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당시 부산에 있던 후광은 주요 야당 인사들을 국제 공산당원으로 날조하여 강제 연행했던, 일명 ‘부산 정치 파동’을 겪으며 정치에 뜻을 두게 된다.

김성수 부통령의 사표제출에 이어 이승만, 함태영이 정·부통령에 당선되고, 국회에서는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제 1차 발췌개헌(拔萃改憲)안이 통과되었다. 개헌안에 의해 지방의 도, 시, 읍, 면 단위까지 의원을 뽑았는데, 부정선거로 얼룩진 혼탁한 사회분위기에도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후광은 ‘과오를 개혁하려는 자들에게 순교의 횃불을 들어준다는 점에서 정치는 종교와 같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경구를 순수한 마음으로 신봉하였다.

왼쪽사진:정치 입문 시절 오른쪽 사진: 의원 당선 후 정치활동을 할 때.. 한 시대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들이 사라져갔듯, 민주주의를 위해 고문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던, 후광 김대중 대통령도 세월의 명령만큼은 거역할 수 없었던가보다. 好男형의 훤칠한 모습에 주름이 지어져있는 지금의 얼굴을 보면, 허락도 없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세월이 야속하고 밉게만 하다...

그 무렵 후광은 상당히 튼실한 기업체 두 개를 운영하는 사업가가 되어 있었다. 목포일보사를 인수하여 경영수완을 마음껏 발휘하였고, 화물선 15척 정도를 거느린 해운회사를 운영했다. 번창하는 사업 속에서 경영이란 살아있는 생명체임을 실제 경험으로 깨우쳤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 ‘더 큰 경영’이라 할 수 있는 정치활동을 위해 정든 회사와 사원들을 떠났다.

후광이 처음으로 출마했던 선거는 1954년에 있었던 민의원선거였다. 아직 서른도 되기 전 목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자신이 있었다. 노동조합의 동향이 목포 선거의 향방을 결정짓던 그 시절, 평소 그에게 호의를 갖고 있던 노조위원장과 간부들이 전면적인 지지를 표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경찰에 연행되어 자유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풀려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각서대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계의 문턱에서부터 음해와 공작에 시달림을 받아야했다.

1956년 10월,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해 5월 대통령에 출마했던 신익희 후보가 선거유세도중 이리(전북 익산)에서 급서(急逝)하고, 부통령에 선출된 장면 박사가 입당 권유를 해와 그에 따랐던 것이다. 장면 박사는 그 이듬해 여름 명동 대성당에서 세례를 받을 때도 대부가 되어 주었다. 후광의 세례명은 ‘토머스 모어’이다.

당시 한강백사장에서 있었던 신익희 후보의 유세와 후광의 69년 장충단공원에서의 유세는 요즘시대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그해 TV방송국(HLKI)이 개국한 것도 학창시절부터 예술에 관심이 많던 후광과 무관할 수 없다 하겠다.

민주당에 입당하자 당장 선거구가 문제였다. 고향 목포에는 같은 당 소속 의원이 있었기 때문에 궁리 끝에 강원도 인제에서 출마하게 되었다. 당시 군민들은 압도적으로 야당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서울에는 호남사람을 차별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지금과 같은 이른바 ‘지역 감정’이란 것은 전국 어느 지역에도 없었다.

제4대 민의원 선거는 1958년 5월에 열렸다. 그러나 결국 그 선거에 출마조차 못했다. 후보 등록조차 못하게 하는 자유당 정권의 치밀하고도 집요한 방해공작 때문이었다. 너무나 속이 상했던 후광은 군사지역인 그 곳 사단장을 찾아갔다.

사단장은 마침 부재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지만 이참에 이름이라도 알아두자 싶어 당번병에게 물어보았다. 사단장은 훗날 목숨까지 빼앗으려 했던 박정희 장군이었다. 만약 거기서 박정희를 만났더라면 그들은 함께 부정 선거에 대해 의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뒤 서로가 최대 정적이 돼야 했던 숙명도 조금은 그 양상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1959년 6월 인제에서는 다시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 부정에 대한 재판에서 민주당이 승소했기 때문이었다. 후광이 용공혐의를 뒤집어쓰게 된 것은 이때가 효시다. 자유당에서는 멀리 전라남도에서 그와 얼굴 한번 마주한 적도 없는 사람을 데려다, 그와 함께 공산당 활동을 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도록 했다. 후광은 낙선했고, 부정선거의 후유증이었는지 아내인 차용애와도 사별을 하게 된다.

민의원이 되지 못했는데도 4.19혁명으로 출범한 내각제정권의 장면 총리는 그를 여당인 민주당 대변인으로 지명했다. 그리고 선거에서 후광을 골탕 먹이고 당선됐던 상대 후보는 예전 3.15 선거부정에 연루되어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후광은 1961년 5월 14일, 다시 실시된 인제 보궐선거에서 마침내 당선되었다.

52년 부산정치파동이 정치입문을 하게 된 동기였다고 하지만, 공식적인 입문은 국회등원을 하게 된 1961. 5. 14일의 보궐선거 승리라고 해야겠다. 하지만, 후광의 정치역정은 시작부터 불운했고 당선은 곧, 극심한 고난과 생사를 넘나드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당선 3일 만에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국회가 해산되고 당선도 무효가 되면서 정치규제에 묶이는 비운을 맞게 된다.

결혼 초기 시절...옷차림 등으로 보아 1960년대 초쯤으로 생각되고, 뒤에 서있는 여성이 가정부, 오른쪽 학생이 ‘홍일’ 갓난아기가 ‘홍업’이고, 막내인‘홍걸’이가 태어나기 전에 찍은 것으로 보인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느낌을 주는 사진이다.

어떤 자들이,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파괴하려 했단말인가.. 무엇 때문에 가장의 목숨까지 앗아가려고 안달을 했는지 그들은, 더 큰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국민들과 후광 앞에서 무릎꿇고 사죄를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