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제닉'의 정치
'포토제닉'이라는 말은 원래 '빛으로 만든'이라는 뜻입니다. 사진술은 빛으로 된 카메라 옵스쿠라 영상을 평면에 정착시키는 기술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포토제닉'은 빛으로 만든 이미지라는 뜻을 갖게 됩니다. 물감으로 이루어진 회화의 이미지와 달리 사진의 이미지는 빛으로 만든, 포토제닉의 이미지입니다.
회화와 사진은 다릅니다. 회화에서 모사대상과 복제이미지 사이에 닮음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의 손입니다. 그래서 '예술'이 되는 거죠. 반면 사진은 모사대상과 복제 이미지 사이에 인간의 손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재현의 예술이 광학의 기술로 대체되는 거죠. 그래서 사진은 회화만큼 예술성을 갖지 못하되, 회화가 가질 수 없는 기록성을 갖는 것으로 여겨지곤 하지요.
'조작'이라는 뜻을 갖는 manipulation이라는 말을 봅시다. 이 안의 mani라는 표현은 '손'이라는 뜻입니다. 즉 조작에는 반드시 인간의 '손'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사진의 경우 대상과 이미지 사이에 인간의 손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사진은 종종 조작이 불가능한 사실의 진실한 기록으로, 혹은 사실의 결정적인 증거로 간주되곤 하지요.
사진을 이용한 조작은, 이 기술복제에 대한 사람들의 이 턱없는 신뢰를 이용합니다. 물론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진이 또한 조작될 수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그 어떤 전통적인 매체보다 쉽게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사진의 그 생생한 영상에 쉽게 속아넘어가곤 합니다. 사진은 너무나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열린우리당의 정치는 정확하게 '포토제닉'의 정치입니다. 이들의 정책은 그야말로 '빛'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들이 약속하는 세상 역시 끈적끈적한 물질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파동인지 입자인지 알 수 없는 빛의 흐늘거림으로 이루어진 신기루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빛을 통해 세상의 환영을 만드는 데에 집착하는 것은, 실제로 세계를 바꿀 의지도, 실제로 세계를 만들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저들은 이 상황에서 충분히 기득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부와 권력은 이미 저들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와 권력의 창출을 더 원할히 하기 위해서는 총선의 승리가 필요합니다. 총선에서 이기려면 그 빌어먹을 민주주의 때문에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야 합니다. 유권자의 표를 끌어오려면 그들에게 뭔가 약속을 해야 합니다.
그 약속은 가능한 한 커다란 것이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실은 자신들의 기득권은 유지 내지 확장해야 합니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 내지 확장하면서, 동시에 유권자들에게 뭔가 커다란 것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일견 모순되는 이 두 과제를 해결하는 길이 뭘까요? 그런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놀랍게도 그런 방법이 존재합니다.
그게 바로 '포토제닉'의 정치입니다. 한 마디로 자기들의 이권은 유물론적으로 챙기고, 대신 유권자들에게는 빛으로 만든 환상의 세계를 주는 거죠. 천문학적 액수의 검은 돈을 유물론적으로 챙기면서, 유권자들에게는 노란 색 '희망돼지'의 포토제닉 이미지를 제시하는 겁니다. 청소는 미화원들 시키고, 그것을 쓰레기차에 싣은 사진은 자기들이 찍는 겁니다. 설거지는 여자들 시키고, 장갑 낀 사진은 자기들이 찍는 겁니다.
얼마 전에는 기가 막힌 장면이 있었지요. 한나라당의 '차떼기'를 패러디하여 희망돼지를 차떼기로 열린우리당에 전달하는 세레모니를 했다는 겁니다. 이게 지금 불법자금으로 특검을 받는 그 당에서 하는 짓거리입니다. 대통령의 정신적 스승이라는 분의 검찰 소환을 앞둔 바로 그 당에서 하는 짓거리입니다. 자기들이 받은 검은 돈의 현실을 자기들이 빛으로 만든 포토제닉의 이미지로 가리려는 거죠. 어떻게 인간의 낯을 쓰고 이럴 수가 있을까요?
이들의 엽기성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닙니다. 이번엔 '미아'를 동원하기로 했군요. 우리 나라에서 미아가 발생하면 거의 찾기가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공적인 보호시절도 정보가 허술하고, 사설 보호시절도 어지럽게 널려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 대한 정책적 대안을 내놓지는 않고 기껏 한다는 게 미아가 된 어린이들의 사진을 후보자들 명함에 넣어 돌리겠다는 겁니다. 미아찾기마저 포토제닉을 할 모양입니다. 세상에, 미아까지도 선거에 동원해 먹겠다는 넘들. 한 마디로 미친 새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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