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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신호탄

1980년 4월 20일 경 우리 가족은 광주 인접 지역인 나주 고향집에서 생활하시게 된 할아버지, 할머니를 봉양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광주 화정동의 살림을 정리하고, 나주로 이사를 했다. 바로 광주 5.18 민중항쟁이 일어나기 한 달 전 쯤의 일이었다. 그 때 내 나이가 10살. 주민등록상으로는 9살의 나이로서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새로운 환경에서 재잘대면서 놀고, 학교 다니면서 공부하던 5월의 어느 날 저녁, 큰 고모가 슬레이트 지붕의 우리 집에 오셔서 작은 방에 자리 잡으시고서는 놀란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광주에 일보러 갔더니, 양동 시장 사람들이 공수부대가 광주 사람 다 죽이러 온다고 짐 챙겨서 얼른 집으로 가야 한다고 난리가 났더라. 광주가 난리가 났어. 나주 오려고 버스에 탔더니 송정리에서 군인들이 쫙 깔려 가지고 차 세우고 검열을 하고 복잡해. 공수부대 군인들이 여자 젖꼭지를 잘라버렸다고 사람들이 별 소리를 다 한다니까. 간신히 어떻게 어떻게 나주까지 왔다. 진짜 큰 난리 났더라”

겨우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탓도 있지만, 우리나라 군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죽인다는 말에 머리에서 개념이 실종되는 경험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 집 바로 앞 광주 쪽에서 나주로 연결되는 비포장 신작로로 한 대의 용달차가 나주 시내 쪽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동네 애들하고 나 그리고 할아버지가 나가서 바라봤는데, 용달차 짐칸에는 6~7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각목 비슷한 물체를 들고 어떤 사람은 흰 두건을 이마에 두르기도 하고 누구는 서있거나 혹은 앉아 있으면서 나주 시내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보기도 했다.

한동안 나오지 않던 TV가 다시 방송이 됐고, 철부지 어리석은 나는 다시 TV로 만화(애니메이션)를 볼 수 있다고 좋아했던 부끄러운 기억도 있다.

그리고 해를 넘겨 1981년이 되었는데 나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 해에는 행정구역상 나주에 속한 지역이지만, 노안이라고 불리는 나주에서 조금 떨어지고 광주로부터 더 가까운 지역의 양옥집의 2층에 우리 식구가 거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만 생활하시던 나주 집에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루고 돌아온 날, 할아버지가 남겨 놓으신 유산 배분 문제로 아버지께서 정리를 보시는 와중에, 평소 우리 가족과 갈등이 많고 친척 형제간 끼리도 문제를 많이 일으키던 고모들이 오빠되는 아버지와 큰 아버지, 막둥이 작은 아버지를 두고 자기들 맘대로 할아버지 유산을 다루려고 한다고 반발을 하는 일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성질이 불같던 아버지가 고모들을 가만 안 놔두겠다며 분노를 하시게 되면서. 아버지 손에 들린 큰 유리 술병이 깨지고, 장사같은 힘을 가진 불같은 성질의 아버지를 말리느라 어머니, 큰 고모, 동네 이웃들이 복잡하고 야단이 아닌 상황이 연출되었다. 겨우 11살 아이였던 나와 두 살 어린 9살 여동생은 이 광경에 울음보가 터지고 난리가 아니었다. 그렇게 호랑이 산고개 넘어가는 듯한 하룻밤을 보냈는데......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노안 집에 모습을 보이시지 않는 거였다. 고모들 작살을 내겠다고 벼르고 계시던 터라서 나주 집에서 계속 농성(?) 중이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들리는 얘기가 아버지가 유치장 감옥에 계시다는 거였다. 고모들 중의 누구에게 손찌검을 하셔서 아니면 불같은 아버지 성질을 누가 건드렸다가 정말 누가 하나 죽기라도 해서 유치장 감옥에 들어가신 걸까 하고 걱정에 휩싸였지만 알고보니 그게 아니였다.

아버지는 청소년 시절, 나주 소재의 한 중학교를 1등 석차로만 수학하고 최우수 졸업에 고등학교도 학교 추천으로 당시 전국적 명문인 광주고등학교에 입학 시험을 치루고 합격한 수재였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가 가고 싶어하는 광주의 명문 고등학교를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지와 무식함으로 인해 “너 고등학교 다니는 거 나는 아침에 아침 밥 못해준다”는 청천벽력같은 할머니의 선언을 들어야 했고, 그것을 덩달아 묵인하는 할아버지에게 절망을 해야 했다. 이제까지의 인생동안 나는 제일 하기 싫었던 공부가 아버지는 학교 시절 제일 재미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며 컸던 내 기억이 새롭다.

이 지경이 되자, 아버지는 인생의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고구마 팔고 문갑에 넣어 논 얼마의 돈을 가지고, 서울로 가출 상경하셨다. 그 시대 서울에서 껌팔이 하고 거의 깡패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생활했지만 그 뜨거운 향학열은 변함이 없어서, 서울의 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건국대 화학과까지 입학하게 되었다. 이후 고향 집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대학에 합격했으니 금전적인 지원을 부탁했는데, 이마저도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 금전적 어려움 때문에 대학을 중도에 포기해야 했고 서울에서 생활하던 중 나주 집으로 군대 입대 영장이 날아들고, 아버지는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대에서도 명사수에, 최우수 표창을 받던 아버지였는데 그렇게 군생활을 하며 잠을 자고 있던 어느 날 밤, 선임하사가 갑자기 들이닥쳐서는 아버지와 내무반의 병사들을 모두 깨우더니, 어디로 가는지 알 수도 없는 자동차에 태우고 도착해서는 느닷없이 큰 배에 영문도 모른 채 오르게 했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어딘가에 도착해서 보니 월남(베트남)전 전쟁터더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그 사지에서 십자성 부대 보급부대(칸나부대)에 근무하며 지내시면서 부상까지 당하는 고초를 겪게되고, 자신의 꿈과 희망이였던 배움을 단절시킨 할아버지, 할머니가 원망스럽고 보기 싫고 미워서 귀국을 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월남으로 들어가셨다. 악에 받쳐서 전쟁터에서 죽겠다고 마음 먹으셨었다던 말씀이 떠오른다. 그 이후 귀국하여 20대 후반 나이에 어머니와 결혼하시고, 나와 여동생을 낳아 성장시켜 오셨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생활했던 월남전 십자성 부대의 보급부대(칸나부대) 병사로 있을 때 아버지가 취급하던 물품들이 꽤 있었다. 망원경, 프리즘, 펜촉, 펜대, 뚜껑이 도톰하고 반원형의 돋보기로 돼 있는 조그만 유리함, 공책들, 연필들, 면도기, 면도거품, 미제 라디오, 큰아버지께도 가져다 드렸다는 크나 큰 사진 앨범, 카메라 기타 등등의 어린 내 눈으로 보기에는 재미나고 신기하기만 한 다른 집에서는 보지도 못하는 물건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느 날부터 집에 보이시지 않던 때까지 내 눈에는 띄지 않던 요즘의 벽시계 건전지로 쓰이는 소형 건전지보다는 더 길며 두껍고, 시거 담배정도 굵기보다는 못하며 길이도 그 시거 담배 정도나 되는 형태로 줄줄이 몇개가 진공포장 되어 있는 붉은 물품을 난생 처음 보게 되었다. 그것은 월남전에 사용되었던 미군과 한국군 측이 사용했던 신호탄이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 중 보급부대에 계시면서 취급하시거나 소지하고 계시다가 귀국할 때 가지고 오신 신호탄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신호탄이 문제였던가 보다.

고모들(큰 고모를 제외한 나머지 고모들)에게 화가 날 대로 나신 아버지는 그 신호탄을 당신에게 함부로 반항하고, 분노케 하는 고모들을 두고 가족 간 교통정리를 해야되겠다고, 고모들 앞에서 신호탄에 불을 붙여 터뜨려 버리겠다고 위협을 하셨던가 보다. 이에 큰고모를 제외한 문제의 고모들, 그리고 당신의 모친 같지도 않은 할머니가 나서서 “저 놈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며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에서 아버지를 체포해 갔던 것이다. 그 때 즈음해서 노안 길거리에는 이런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광주 사태 당시 사용 불법 무기류 자진 신고기간”이라는 글귀 말이다.

그런데 얼토당토 않게, 아버지와 우리 가족에게 얼핏하면 어이없는 시비를 걸고 대립을 보이던 둘째 고모가 아버지의 신호탄을 광주 5.18때 사용된 신호탄이라고 수사관서에 신고해서 모함, 음해를 하는 바람에 조사하던 수사관서에서 광주 5.18 당시 사용된 시민군(시민군의 무기)라는 혐의로 조사를 벌이게 된 것이다. 둘째 고모는 5.18 광주항쟁 기간 당시 서울 자기 집에 있었는데 그런 사람이 전라도 나주의 우리 아버지가 광주 5.18 항쟁기간 동안 어디에서 뭘 하면서 어떻게 살았는지 특별한 그 시기 우리 가족상황에 대해 눈으로 무엇을 보고 귀로 무엇을 들었으며 얼마나 어떻게 안다는 것인지 그 소설이 이해가 안되고 사실을 아는 사람으로서 우습기만 하다. 이 정도 되면 고모(들)라고 호칭하고 싶지도 않다. 실지는 그들에 대해 고모년, 고모것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그 5.18 광주민중항쟁 기간 동안 둘째 고모를 비롯한 셋째 넷째 고모들은 내가 코빼기 그림자도 본 일이 없다. 당시 나주 우리 집에는 전화도 없었다. 원수같은 고모들과 편지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였다. 5.18 광주항쟁기간 동안 학교가 휴교 중이였기 때문에 지금도 그 때 살던 나주 집의 분위기를 기억하는데 나주 시내도 아니고 광주와도 동떨어져 있던 지라 고요하기만 했고, 무슨 당시 집에 특이사항이 있었다면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우애가 있으셨던 큰고모께서 한 번 집에 들르신 것(앞서 소개한 5.18 광주에 뭣 모르고 가셨다가 겨우겨우 무사히 돌아오셔서는 나주 집에 들르신 것) 외에는 어느 누가 집을 찾은 일도 없었다. 아버지와 우애가 깊으신 큰고모를 제외한 고모들 즉 둘째, 셋째, 넷째 고모는 우리 가족이 어떻게 잘 지내는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자신들을 먹여 살리고 집안을 꾸린 하나 밖에 없는 집안의 일등공신인 아버지가 밉고 못마땅하며 우리 가족의 파멸만을 소망하고 일생을 사는 전생에 원수 지간이 아니였나 싶은 생각밖에 안드는 그런 희안한 사람들일 뿐이였다. 5.18 광주 민중항쟁 기간 동안 나주 그 오막살이 집에서 함께 웃고, 자고 하면서 지낸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고 그럼 귀신이란 말인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버지는 5.18 광주민중항쟁의 시간과 공간 그 무엇과도 관련이 없었다.

나중에 나주 경찰서에서 월남전에 참전했던 경찰 관계자들이 신호탄을 조사하면서 확인하고는 “이 신호탄은 광주사태 시민군들이 사용한 무기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월남전에 사용된 신호탄에 불과하다” 하고 아버지를 조사하던 수사관서 쪽에 알렸고 그런 이후에야 아버지는 조사를 받던 중 비로소 혐의를 벗을 수 있으셨다고 한다.

그러한 급박한 상황에 놓인 어머니는 집에 있던 신호탄 포장 두 다발 중 한 개를 아랫집 주인 할머니 댁에 부탁해서 숨기고, 다른 하나는 그 때 초등학교 다닐 적 미술용품 가방으로 쓰라고 만들어주신 파란 면소재의 가방 안에 넣어 부엌 못걸이에 걸어두셨다. 그 날 밤이던가, 며칠 후 밤이던가 방에 있는데 집 옆으로 자동차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이층집 문으로 몇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들어섰는데 사복 차림을 한 형사들이였다. 집의 거실을 수색하고 작은 방과 안방을 수색하고 목욕탕을 수색하더니만 부엌에 들어선 한 형사가 파란 미술가방을 뒤지고는 문제의 신호탄을 찾아냈다. 어떻게 내가 그 형사들의 차를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형사들이 검은색 집차를 타고 온 것을 본 것은 확실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아버지는 세월이 흘러 60 약간 넘기신 연세까지 같은 아파트지만 지금의 동호수와 다른 아파트에서 집안 식구들을 지탱하시다가 작고하시고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시기 얼마전의 시점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들 형사들에게 끌려간 뒤 고문을 받으셨다는 것이였다. 처음에는 무슨 운동장 같은 곳으로 아버지를 끌고 가더니 거기서 어떤 형사인지 경찰인지 군인인지 모를 한 사람이 폭행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합기도 3단의 실력이 있었기에 그 사람을 제압했는데 주위에 있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어, 운동 쫌 했네?” 이러면서 집단으로 달려들어 제압을 했고 이후 어딘지 모를 캄캄한 지하실로 아버지를 끌고 갔다고 한다.

그리고는 이후 그 장소에서 회전의자에 묶어 뱅글뱅글 돌리고. 각목으로 피가 흥건하도록 두들겨 패고, 정신을 잃으면 찬물을 들이붓고 이후 정신이 들면 다시 회전의자에 묶어 돌리고 각목으로 두들겨 패며 고문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거지 거짓 자백을 집요하게 강요하면서 하는 말이 “그 신호탄이 광주 사태 때 시민군이 사용한 무기가 맞지?” 하더란다. 그러나 아버지는 있는 사실 그대로 “절대 그렇지 않다.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내가 부대에서 소지하다가 귀국할 때 가져 온 것일 뿐이다” 라고 끝까지 얘기를 했고, 없는 얘기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거짓 자백을 해야만 고문이 끝날 터인데도 아버지는 굽힘이 없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고문 등의 조사를 하던 과정에 나주 경찰서 관계자들이 그 문제의 신호탄이 광주 5.18과는 관련도 없고 월남전에 사용된 신호탄일 뿐이라는 확인을 해줬고, 자신들도 아무리 아버지를 고문하고 조사를 해봐야 광주 5.18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드러나자 일반 교도소로 옮겨지게 됐고, 얼마 후 우리 가족은 교도소에서 풀려나신 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당시 아버지를 조사하고 고문하던 수사 관계자들은 증거물이라 할 수 있는만큼 문제의 그 신호탄(증거물)이 어느 전쟁터던지 아니면 그 어디에서 어느 때 정식(공식)으로 (주로)사용된 무기류인지 이런 것 저런 것 내력에 대한 정확한 사실확인이 필요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소지자(당사자)인 아버지께 5.18 때 시민군이 사용한 무기(신호탄)가 맞지 않는가 하며 가혹한 고문으로 둘째 고모의 음해와 모함에 의해 신고되어 씌어진 혐의만을 근거삼아 거짓 자백을 강요한 것이다. 아버지를 고문하고 조사하던 수사 관계자들이 사실 확인보다 고문에 열을 올린 것은 그 기회에 당시 최대 약점으로 잡혀있던 12.12와 5.17 쿠데타의 제5공화국의 부당성을 생각지도 않게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에 눈이 멀어 앞뒤를 안가린 것 아닌지 싶다. 생각지도 않은 절호의 기회가 온 상황이였을 것이다. 혐의는 씌어졌으니 어떤 방식으로던지 아버지(당사자)의 입에서 자신들의 추궁에 "에, 그렇습니다" 하는 수긍의 한마디 얘기만 받아내기만 하면 절박한 상화에서 자신들이 수확을 올릴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문하고 조사하던 수사관들이나 관계자들은 수훈 표창을 받고 일계급, 몇계급 특진이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오늘 이런 생각을 했다. 광주 시민들과 시민군들의 고귀한 5.18 광주 민중항쟁이 북한 특수부대의 광주 침투와 그들의 교란 작전에 의해 이뤄진 대남 적화전략이었다는 허황한 얘기까지 만들어 둘러대며 진실을 없애버리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수구보수세력의 지금을 생각해 볼 때, 만일 나의 아버지가 그 당시 캄캄한 지하실 안의 고통 속에서 도와주는 이 없이 고문받을 때 굶주린 야수같은 그들이 강요하는 바대로 그 신호탄이 5.18 광주 민중항쟁에 쓰인 시민군들의 무기였다고 고문의 고통을 못 이기고 거짓 자백을 하셨다면, 정말 두렵고 겁나는 얘기이고 택도 없는 얘기일수 있지만 5.18 이후 6.10 민주항쟁을 통하면서 이어지는 대한민국 민주화의 역사가 그 때 내 아버지의 거짓 자백 한마디가 있고 없음으로 인해서 역사가 그동안 처럼 진행될 수도 없거나 아니면 그간의 대한민국 역사와는 다르게 꼬여버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아버지는 거짓 자백으로 역사의 책임과 죄를 뒤집어 쓰기보다, 당신의 미래에 수치스러운 오욕의 삶을 살고 가족과 후손들에게 고뇌의 삶을 살게 하는 부끄러운 하나님 앞의 죄인이 되기 보다, 그렇게 되느니 차라리 당신 한 몸 그대로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보수수구의 악랄함과 간교함이라면 고문에 못이긴 내 아버지의 거짓 자백을 가지고 작금의 시대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악용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월남전 참전시 소지하다가 가져오신 신호탄을 두고 독재를 거부하고 순수하게 민주주의를 열망한 광주 시민들과 시민군들의 민중항쟁이 아닌 그들이 지금 말하는 북한 특수부대의 신호탄과 무기들의 활용에 의한 국가의 체제전복을 노린 불명예의 폭동이였다는 각본을 쓰면서 광분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집 식구들은 너무나도 씻기 힘든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세계인의 눈 앞에서도 창피하고 부끄러운 죄인들이 되는 것이고, 민주주의 본산 고향 전라도 호남, 광주의 얼굴에 먹칠을 한 의리도 없는 배신자로 불려지는 그 무서운 댓가로써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를 다루시지 않을까. 비상한 두뇌, 사람다운 사람으로,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평생 지론의 아버지는 그 아무도 돕는 이 없는 고통스럽기만 한 캄캄한 지하실에서 당신의 무력한 처신으로 인해 역사가 엉뚱하고 이상하게 잘못 꼬일지도 모른다는 역사 앞의 책임감과 함께 가족의 미래의 삶을 내다보고 계셨던 것이다.

그 때 아버지는 나와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 바로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정신력으로 끝까지 버티며 하나님과 역사의 심판을 생각하게 하는 무책임한 거짓 자백을 끝까지 하지 않으셨다고 했다. 아무리 고통스럽지만 당신 한 몸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대한민국의 역사와 민족의 앞길에 걸림돌이 되거나 누를 끼칠까 두렵고 선조와 하늘에 죄짓지 않겠다는 그리고 하나님 심판 앞에 당당한 아버지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생각한 아버지의 정신과 역량의 발로였던 것이다.

그러나 육군본부나 국가기록원 등에 보관된 아버지의 범죄기록에는 5.18 광주사태와 관련한 무기 소지의 혐의의 기록이 없다. 당시 교도소 교정직 공무원으로 일하고 계시던 막둥이 외삼촌편으로 나는 알지 못하는 상당한 금액을 관계자들에게 써서 말하자면 뇌물을 사용해서 5.18 광주사태 무기 소지나 5.18 관련 혐의 기록을 삭제하도록 힘을 썼기 때문이다.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독재의 서슬퍼런 어두운 시대를 계속 살아갈 텐데 다른 것도 아닌 정권에 대항했던 5.18 광주 사태 당시 무기소지나 관련된 혐의로 교도소 감옥에 있었다는 신원조회 상의 기록이 있다면 처자식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 직장에 취직도 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 시절이기 때문이였다고 어머니는 이후에 말씀해주셨다.

가족으로서는 정말 감사하고 다행스러우며 자랑스럽고 위대하게 빛나는 크나 큰 나의 아버지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아버지의 이런 사연 말씀들을 듣고 있던 내가 "그럼 아버지... 5.18 민주화 운동 유공자 피해보상도 받으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애매해서 될 지 안될 지는 모르지만 신청해 보시지요." 여쭸더니 아버지는 "그런 것 신청하면 뭐 하겠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아버지는 정말 그릇이 크고 강한 감사한 영웅이셨다. 인내하기 힘든 참혹한 고통 속에서도 당신의 목숨을 포기하면서까지 가족과 후손의 삶과 명예를 지켜주셨다.

그런데 그런 분을 아버지로 둔 아들이라는 나는 누차 서프라이즈에 올린 글의 내용대로 보수수구세력의 왜곡되고 거짓된 역사 선동에 속아서 눈이 멀고 귀가 막혀서 아버지의 위대하고 빛나는 역사적 삶을 개념잡지도 못한 멍청이 무식쟁이로서 치매환자처럼 정신없이 깜빡 잊어버리고, 무지함에 올라 타 어이없게도 아버지를 고문하고 우리 가족을 역사와 민족, 고향의 배신자요 하나님 앞의 죄인으로 만들려 했던 원수요 적인 보수수구 작자들의 편에 섰던 것이다. 이런 청천벽력같은 인생 사연의 운명이 어디에 또 있을까. 생각해 보니 나는 참 많이 우스운 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지금 돌아가신 아버지께 그리고 내 과거의 부끄러운 행적을 알고 있는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사무치게 죄송하다고 어리석고 몽매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고 사죄하기 위해서, 앞으로는 부모님과 형제 앞에서 그런 부끄럽고 못난 삶을 살지 않겠다 맹세하고, 그 어리석게 살았던 인생의 오점은 아들로서 형제로서 영원히 영혼에 갖고 가겠다는 영혼의 맹세를 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보수수구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 눈에 보이기 시작하던 진실의 틈에 바로 어린 시절 겪은 내 아버지와 가족의 이런 사연이 있다. 운명은 그렇게 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는데 나는 왜 그다지도 정신없고 어리석은 인생을 살았을까. 정말이지 후회막급이다.

5.18 을 맞을 때마다 가슴을 치며 생각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묻어두었던 나만의 마음이며 이야기다. 정말이지 역사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고,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은 무거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