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자유게시판 > [노대통령 취임 한달] 光州민심 현장 르포

들끓는 당원들 “밀어줬는데…우리대통령 맞아?”
무심한 시민들 “딱한 DJ가 다치지만 않는다면”

봄은 왔건만 광주엔 봄이 없었다. 살기가 너무 팍팍하다고들 했다. 재래시장도, 술집도, 거리도 썰렁했다. 상인들은 “이래서 밥 먹고 살겠나”며 푸념이고, 번화가라는 전남도청 부근 술집엔 밤 11시가 넘은 시각까지 2~3팀의 손님이 고작이다. 술집에 온 것인지, 한낮의 커피숍에 온 것인지….

지난 17일 저녁 기자가 처음 만난 ‘광주 사람’은 택시기사 조영식(46)씨. 검찰 인사 이후 노무현 정부의 인사에 대해 이 지역 일간지들이 ‘호남 학살’이니 ‘신 호남소외론’이니 하는 상당히 격한 표현들을 쓰고, 중앙정계에선 ‘호남 정서’가 악화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무성한 상황이었지만, 조씨의 머릿속에 ‘정치’가 끼어들 틈은 없는 듯했다.

“지금 그런 거 신경쓰게 생겼소잉~. 관심없소. …노무현 대통령 만들어준 게 여기 아뇨. 그러니 잘 허것재.”

저녁을 먹으러 들른 도청 인근 M식당. 푸짐한 반찬에 눈이 휘둥그레지던 찰나, 식당 안주인이 ‘정치’에 대해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여태 사람만 징허게 갖다 썼지 혀준 게 뭐여. 즈그들(자기들) 배만 불려놨지. DJ만 딱허게 돼부렀자너~” 아주머니의 말끝엔 이른바 ‘호남 정서’라는 말이 주는 ‘긴장’보다는, DJ(김대중 대통령)를 향한 ‘연민’만이 남아있었다.

광주타임즈의 오치남(吳治南) 정치부장은 “식자층은 푸대접이라고 실망할지 몰라도, 서민들은 무관심, 무반응”이라고 전했다. 젊은 층도 비슷해서, 전남대 4학년 이모양은 “특검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다. 학생회도 등록금 투쟁만 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 물’을 먹고 있다는 사람들의 반응은 옥타브가 조금 높았다. 광주시의회 이형석(李炯錫·42) 의장은 “일단 지켜보지만 DJ가 다치는 상황이 오면 민심이 악화될 수도 있다”며 “현 정부를 지지해야 하는가에 대해 자문(自問)해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광주동구의회 임택(林澤·41) 부의장은 “인사문제는 비판할 명분이 없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DJ의 대북 화해정책은 잘한 것인데, 그것마저 난도질하면 우리는 자존심에 너무 큰 상처를 입게 된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노 대통령이 우리 대통령 맞나”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정도이지만, 특검수사의 향배에 따라 민심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서민들의 반응. 택시기사 11년째인 김이현(57)씨는 “(특검제로) 다 까발겨서 뭣하자는 것인가, 참말로. 노 대통령이 정치력이 부족한 거 같소. 그렇고롬 밀어줬는디…”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야 똑똑헌 놈 갖다 쓰믄 돼지. DJ옆에 있던 사람들 덕 본 게 있소?”라고 했다. 양동시장에서 나물 파는 한 할머니는 “팔십 먹은 노인네가 딱허지도 않은가. 참 모질기도 허데~”라고 했다. 그래도 ‘노풍의 진원지’라는 자존심과 기대는 여전히 묻어나온다. 유영호(택시기사)씨는 “DJ가 힘이 없으니까 옳은 일을 하고도 당한 거지. 노 대통령도 그런 거 아뇨? 앞으로 (총선에서) 경상도쪽도 많이 올거요”라고 했다

공무원들이나 이 지역 민주당 당직자들의 반응은 ‘끓는 점’을 오르내린다. ‘열 전도율’은 다 다른 법이다. 민주당 광주시지부 김선문 사무처장은 “14일 특검법 공포 후 며칠간은 시지부로 ‘청와대 전화번호가 뭐냐’ ‘완전히 속았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아예 호남당으로 갈라서자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 당원은 “팔십 노인에게 감방가라는 거냐?. 특검 주장한 신주류들은 도대체 예의가 없는 사람들”이라고 열을 올렸다. 전남도의 한 고위공무원은 “선택과 집중이란 게 결국 호남은 죽으라는 얘기 아닌가. 영남에 비해 20~30년 뒤처졌는데…”라며 새 정부의 ‘지방분권정책’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전남대 사회학과 정근식(鄭根植) 교수는 “현 정부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기대가 그리 높진 않다. ‘호남 정서’는 다분히 정치권이 과장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호남의 현실은 모른 채 영남위주의 사고에서 나온 지역개발론이 현 정권의 정책에 묻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광주 YMCA의 윤장현(尹壯鉉·54) 부이사장은 “광주는 개혁과 선택을 요구받고 있다. 큰 줄기에서 특검수사가 역사 발전을 향해 나간다면 수용 가능하겠지만, 현 상황은 무척 유동적이다”라고 말했다. 광주는 아직 ‘2002년의 선택’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하는 듯 보였다.

(光州=李明振기자 [email protect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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