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정부 국정원 무차별 정치사찰…검찰수뇌·여당의원도 도청
김은성씨 '진승현 수사' 도청하다 경고 받아
검찰, DJ 정부 당시 국정원장 4명 소환키로
불법 감청을 지시한 혐의로 8일 구속된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왼쪽)과 김 전 차장으로부터 도청에 관한 정보보고를 받았는지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는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 권 전위원은 우울증 등 지병 악화로 형 집행정지를 받고 삼성제일병원에 입원 중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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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불법 도청 ‘핵폭풍’
김대중(DJ)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무차별적인 불법 도청을 통해 정치 사찰을 하고 검찰 수뇌부의 대화 내용까지 감청을 했던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국정원 과학보안국(8국) 직원들에게 불법 감청을 지시하고 독려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로 8일 구속된 김은성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의 영장을 통해서다. 검찰은 이번 주부터 DJ 정부 때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천용택.임동원.신건씨 등 4명을 전원 소환해 도청을 묵인하거나 도청 내용을 보고받고 이를 청와대에 전달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할 방침이다.
"김씨에게 세 차례 공개 경고"
2000~2001년 검찰 고위 간부를 지낸 A씨는 9일 "진승현 게이트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 국가정보원이 검찰청도 도청을 하기에 김은성 당시 국내담당 차장에게 세 차례나 (도청을 중단하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는 국정원에서 유선중계통신망 감청 장비인 R-2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인 CAS를 이용한 도청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였다. A씨의 말은 DJ정부 시절 도청이 무차별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그는 "김씨에게 '경고를 무시하고 도청을 계속하면 법대로 처리하겠다'고도 했다"면서 "당시 도청당할 것을 우려해 사무실에서 회의를 할 때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김씨가 2000년 11~12월 진승현 사건에 연루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의 수사를 받던 여러 사람의 통화 내용을 도청하도록 지시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와도 맥을 같이한다. 당시 진씨는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밝히려는 검찰 수사망을 피해다니다 도피 3개월 만인 12월 초 자진출두했었다. 김씨는 자신에게 거액의 뇌물을 준 진씨를 보호하기 위해 검찰 수사 상황에 대한 도청을 지시했고 그 과정에서 검찰 수뇌부의 대화까지 도청했을 것으로 수사팀은 보고 있다.
DJ 정권 실세로 향하는 도청 수사
검찰은 국정원이 R-2와 CAS를 이용해 정치인.언론인의 전화 통화 내용을 광범위하게 엿들은 사실을 확인했다.
김씨의 영장에 따르면 그는 2000년 12월께 국정원 8국 직원들을 시켜 당시 권노갑 최고위원 퇴진을 요구하던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대화를 도청했다. 정동영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현 통일부 장관) 등 소장파 의원들이 "권 최고위원 등 일부 동교동계 인사들이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인사 전횡을 하는 등 당을 무기력하게 하고 있다"며 권씨 퇴진을 주장한 것이 발단이었다. 검찰은 DJ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원 요직에 기용된 김씨가 민주당 실세들과 친분이 두텁고 권씨에게는 수시로 정보 보고를 했다는 점에 주목, 불법 도청 자료가 불법적으로 활용됐는지를 캐고 있다. 특히 김씨가 불법 감청을 통해 얻은 정보를 권씨뿐 아니라 청와대 등에 보고했는지도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김씨는 "국가통치권 보존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도청을 했을 뿐 정치 사찰의 목적은 없었다"며 "도청은 전임자들에게 이어받은 것이고 내가 없애자고 할 위치도 아니었다"고 밝혀 도청이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음을 내비쳤다. 검찰은 김씨가 임동원.신건씨와 직접 만나거나 5~6차례 전화통화를 한 사실도 확인, 사건 축소.은폐 목적이 아니었는지도 확인 중이다.
조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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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청 부추긴 당시 여권 위기 상황
비리 연루 의혹 권노갑씨 퇴진 요구에
여권 핵심, 정풍세력 정보 필요했을 듯
김은성씨·권씨 '진승현 게이트' 이어 또 악연
김대중 대통령 시절 국정원의 정치권 도청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8일 구속된 김은성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이 권노갑 전 민주당 최고위원의 사퇴와 동교동계의 후퇴를 불러왔던 2000년 12월의 민주당 '정풍운동'을 도청했다고 자백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풍운동에 참여했던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의 전화 통화를 도청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야당이나 언론.재계 인사뿐 아니라 여권 인사들까지 조직적으로 도청한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위기의 여권 상황이 도청 수요 부추긴 듯
2000년 정치권은 여권의 위기가 본격화하던 때였다. 4.13총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자민련 공조체제가 무너졌다. 단독 원내 1당을 노렸던 민주당은 총선에서 여전히 제2당에 머물렀다. 여소야대 정국의 불안감이 여권을 휘감았다.
부동산 명의신탁 파문과 한빛은행 불법 대출 의혹 사건으로 박태준 총리와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차례로 물러났다.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 사건'을 시작으로 하반기에 들어선 진승현 게이트 등 벤처 관련 비리가 꼬리를 물었다. 게이트의 배후에 DJ의 아들들과 권노갑씨 등 동교동 핵심들이 있다는 소문과 국회에서의 폭로가 이어졌다.
정풍운동은 이런 정권의 위기 상황에서 당시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 등이 주도했다. 정 당시 최고위원은 청와대 비공개 만찬회동에서 DJ에게 권 최고위원의 '2선후퇴론'을 주장했다.
내부 분란에 시달리던 여권 핵심이 상황을 장악하기 위해 관련 세력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권 위기가 도청의 수요를 자극했을 것이란 얘기다.
당시 정풍운동에 참여했던 장성민 전 의원은 9일 "당시 나를 비롯한 일부 의원들의 의원회관 사무실과 집 모든 곳이 도청된다는 얘기를 수차례 들었다"면서 "직.간접적으로 수 차례 경고도 받았다"고 말했다.
"도청 불똥 튈라"
민주당 이낙연 원내대표는 "김 전 차장의 발언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없다. 최종 수사 결과가 나와봐야 한다"고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 민주당 내에서는 김 전 차장에 대한 배신감까지 감지됐다. 동교동 측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권씨도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권씨의 측근인 이훈평 전 의원이 전했다. 권씨 측은 불법 감청 정보를 김 전 차장으로부터 보고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한 일부 언론과 인사들에 대해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도 "수사 결과를 지켜볼 뿐"이라며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김 전 차장은 국민의 정부 시절 권씨 등 동교동계 실세들과 불화를 겪었다. 그가 권씨나 DJ의 막내아들 홍걸씨 등의 비위 첩보를 수시로 청와대에 보고했기 때문이다. 2002년엔 권씨와 김 전 차장이 나란히 '진승현 게이트'에 연루돼 재판을 받았다. 이훈평 전 의원은 "진승현 게이트로 얽히더니, 김은성씨가 이번엔 도청 사건으로 권 전 위원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두 사람의 악연을 설명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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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씨 영장서 드러난 DJ 정부 도청 실태
99 ~ 2002년 국정원 2개 팀서 '휴대폰 감청'
'통신첩보' 매일 2차장에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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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불법 도청 ‘핵폭풍’
김은성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에는 국정원의 휴대전화 불법 감청 과정과 수법 등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김씨가 국내정보를 담당한 시기는 유선중계통신망 감청장비(R-2)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CAS)의 사용이 본격화된 때와 일치한다. R-2는 1999년 9월부터, CAS는 같은 해 12월부터 본격 사용됐다. 김씨는 99년 6월~2000년 4월 대공정책실장을 거쳐 2000년 4월~2001년 11월 국내담당 차장을 지냈다.
"8국서 불법 감청 관련 업무 주도"
영장에 따르면 국정원은 디지털 휴대전화가 상용화된 96년 감청장비 개발에 착수해 과학보안국(8국) 운영단 개발팀에서 98년 5월 R-2 시제품을 만들었다. 8국은 김대중 정부 초기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개편될 때 생겨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8국의 불법 도.감청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정치쟁점화하자 2002년 10월 해체됐다.
성능 보완을 거쳐 99년 9월 R-2 5세트를 추가 제작한 국정원은 이를 이동통신사 상호접속 교환기와 전화국(KT) 관문교환기가 연결된 6개 전화국에 설치했다. 국정원 과학보안국 기술연구단도 99년 12월 휴대전화 고유번호와 주파수를 해독한 뒤 반경 200m 이내의 휴대전화 통화를 엿들을 수 있는 차량탑재형 감청장비인 CAS를 20세트 개발했다.
R-2와 CAS를 이용해 불법 감청을 직접 하고 자료를 가공하는 업무는 8국 운영단이 맡았다. 운영단 내 국내 수집팀과 R-2 수집팀이 감청장비를 통해 통화내용을 수집한 뒤 이를 종합처리과(일명 종합분석과)에 넘겼다.
종합처리과가 매일 이를 가공해 만든'통신첩보 보고서'가 종합처리과장→운영단장→8국장→국내담당 차장 등 윗선으로 보고됐다. 김씨 영장에는 이 보고서가 김 전 차장→국정원장→청와대.정권 실세로, 또는 김 전 차장으로부터 직접 정권 실세로 보고됐는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검찰은 향후 김씨 및 전직 국정원장 등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이를 규명할 방침이다.
"본연의 업무도 결과적으로 불법"
검찰 수사의 물꼬가 터진 것은 8월 19일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CAS 사용신청 목록 압수였다. 이 목록에는 마약.산업보안 수사를 담당하는 국정원 6국이 범죄 용의자 휴대전화를 감청하기 위해 2001년 3월 CAS를 대여받아 한 달간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다. 당시 6국의 감청은 범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국정원이 "휴대전화 감청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해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합법적인 감청영장 신청이 불가능해 영장 없이 감청을 했다. 결과적으로 6국의 감청은 불법 감청이 됐고, 검찰은 김씨 영장에서 "김 전 차장은 6국과 공모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고 기록했다.
장혜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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