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성] "송광수총장, 당신은 희망입니다"
▲ 박종성 서원대 교수
한번도 뵌 적 없는 당신께 편지 한 통을 부칩니다. 뵙기는 사실 여러 번이었으나 그것은 잠시였습니다. 저 말고도 이 땅의 숱한 이들이 그랬을 겁니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였으니까요.
일부러 그리 만들었든 아니든 들끓는 세상의 중심에는 대통령이 있었고, 당신은 그 곁에서 채찍을 들고 서 있어야 하지 않았던가요. 자리가 자리인지라 출퇴근길이나 식사시간 전후까지 어김없이 귀하를 노리는 이 나라 기자들이 무척이나 집요하고 악착스러운 나날들입니다. 믿을 데 없고 제대로 눈길 줄 곳 없는 이 땅은 그만큼 엉망이니까요. 기다려라, 서둘지 마라 타이르며 양미간에 내 ‘천(川)’자 그리시는 당신의 ‘모습보기’도 이젠 일과가 되었지요.
세월 가니 예의 그 짜증 섞이신 표정도 익숙해지더군요. 언제부턴가 이 나라 검찰의 수장들은 그다지도 시달리고 욕먹는 자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속으로는 사실 얼마나 설레는 일이었겠습니까마는) 범부(凡夫)는 오르지 못할 그 자리에 오르고도 임기를 마치지 못함은 물론 피의자 신분으로 전락, 동료에게 취조를 받거나 후배가 보내는 감옥까지도 기꺼이 가야만 하는 그런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어지러이 돌며 천지가 개벽을 해도 우리는 만근(萬斤)의 입술과 억장의 심지를 고루 갖춘 검찰총장을 어느 날 한 번 본 적이 없습니다. 여기저기 굴 껍데기처럼 늘어붙은 임명권자의 허물과 치명적 얼룩을 봐도 그 죄를 묻거나 기필코 단죄하리라 몰아가며 언감생심 온 나라를 극도로 긴장시킨 검찰 수장의 칼칼한 서슬을 만나본 적이 없다는 얘깁니다.
전화번호부보다 더 두꺼운 법전의 밀림 속 나뭇잎 하나 하나를 짚어가며 휘하 검사의 법 적용을 꾸짖거나 처벌 부피가 형편없다고 불벼락치는 선배들이 서초동 언덕 위에 병풍처럼 늘어서 계신지 아닌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알 길이 없습니다. 하다 못해 생각 한번 잘못하여 재판에서 진 후배검사들에게 대갈일성 혼을 내는 그런 모습으로라도 말입니다.
사람이 법을 만들고 그 법이 사람 죽이는 칼이 되었던 역사야 누군들 왜 아니 모르겠습니까. 이제껏 살며 어디 개미 한 마리 안 밟아 죽이고 흐린 날 지렁이 하나 뒤꿈치로 으깨본 적 없는 이 있겠습니까마는, 그것도 분명 죄라 할진대 형법 어느 한 구절 갖다 붙일 조항이 있는지 찾아볼 일이려나요. 그리해서 능히 그것도 죄 값 치러야 한다면 오전엔 불법 대선자금 수사하시고 저녁 녘엔 이승의 시민들 따로 줄 세워 취조해 보실 일이겠지요. 죽어서 만날 염라대왕이라면 산채로 그 동네에 올라 대가 치르지 못할 일은 또 어디 있는 걸까요.
그러나 이마저 죄를 논하고 그 대가 또한 치러야 한다고 말씀드리자면 현실의 저 혹독한 추잡함과 당신께서 시도 때도 없이 맞서야 할 세상의 뒷골목 사정들일랑은 무진장 감상적인 그늘로 뒤덮여 버리는 셈이겠지요. 낮 밤 없이 죄의 강물이 흐르고 위아래 모르게 패덕이 판치는 이 땅에 어디 정의란 이름의 젖과 꿀이 넘쳐날 날 있을라구요. 법으로는 모자라 체제까지 만든 인간은 이제 체제가 일궈낸 도덕에 질식하여 겉으로야 죽을 채비를 마친지 오래가 아니었던가요. 그 같은 표정 속에서 또 속이고 속아주며 하루하루를 잘도 견뎌내고들 있습니다.
정말로 도덕과 양심에 따라 살 수만 있다면 귀하가 계신 그곳부터 다 쓸어내고 법원 검찰청 언저리는 푸른 들판으로 바꿔야 할 일이겠지요. 그러나 치미는 분노는 이미 혼자의 일이 아니고 누르지 못할 원망의 용솟음도 이제 위기를 넘어 폭발직전의 허무와 탈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거꾸로 묻지요. 당신은 이 허탈과 이 배반과 이 진저리나는 염증의 세상 속에서 무엇으로 살며 어찌 버티고 계신지요.
얘기는 좀 더 진지해져야겠습니다. 별 볼 일없는 이 세상에 오직 한 사람, 그래도 삭풍 속 비바람에 등잔불 꺼질 새라 염려하는 이는 귀하 뿐이라 믿는다면 그건 저만의 환장(換腸)일까요. 아님, 미지의 인간이 보내는 턱없는 환상일까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최고권력의 비리를 법으로 비춰 ‘그것은 죄였다’ 또렷이 말한 검찰총장 하나 없던 이 땅에서 안 춤 어디에라도 비수하나 숨기고 있을 당신의 모습이 요즘 따라 더욱 둥글고 모진 것을.
도토리 키 재기 같은 검찰총장들의 수난사(受難史)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지만 당신은 그 중 다르셨습니다.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민이 바라보다 숱하게 비명에 간 그 자리에 앉아있긴 마찬가지지만, 다섯을 바라면 여덟을 꿈꾸게 하고 거들먹거릴 것이라고 염려되면 이내 되레 머쓱해하시는 당신은 이제껏 맨 손의 글래이에이터였습니다. 투박하고 무지하게 무뚝뚝하여도 찡그리며 자리 뜨는 당신의 모습은 그나마 믿고 싶은 마지막 상대입니다. 깊이 생각하며 말 마디마디를 궁리하는 귀하의 신중은 뒷심의 근수(斤數)를 더하고 있고 특검이 수 없이 만들어져도 하나밖에 없는 출구에는 당신이 있어 기다림은 지겹지가 않습니다. 양념이 아무리 화려하고 유별난들 식당의 명성이야 주방장 손 맛에서 나오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가 제대로 자리 지키는 무서운 사람이라면 설거지도 빛나게 끝날테구요. 어디 꼭 린스가 있어야만 세척이 마무리되겠습니까.
법과 원칙을 지키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는 고백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개혁의 새로운 명분과 면책의 기발한 고리를 찾는 대통령은 분명 당신을 그 자리에 앉힌 장본인입니다. 혐의가 있으나 없으나 모든 죄는 자기 몫이라며 감옥 가길 자처한 이는 그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당신의 선배입니다. 가야 한다면 보내야 합니다. 기꺼이. 그 날이 언제든 얼마나 오래든 기어코 반성하도록 법의 이름으로 등 떠밀어야 합니다. 이날까지 그래왔듯, 당신은 또 뚜벅뚜벅 그 길을 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똑같은 칼날로 긋고 어김없는 잣대로 베면서 말입니다. 대통령에게 혐의가 있다면 분명 ‘그렇다’고 말하셔야 합니다.
현직의 국가원수를 현직의 검찰총장이 기소할 수 없다면 당신이 달려갈 수 있는 벼랑 끝까지 힘껏 내달려 그와 함께 역사의 강물로 같이 빠질 수 있는 용단에 누구보다 서슴없어야 합니다.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겠다고 덤벼든 이의 과오를 벽력같이 단죄할 디딤돌 또한 아무도 만든 적이 없었던 나라였으니까요. 법과 권력의 저 오랜 긴장관계가 새삼 버거워 이제는 끓는 가마솥 이쯤에서 내려놓자고 혹여 그 자리를 내려오려는 어설픈 지름길도 당신에겐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마저 잊으셔서는 안 됩니다. 돌아갈 수도, 내려올 수도 없는 그런.
이 정도의 얘길 전하러 귀하를 방문한들, 어디 무사히 통과할 대검찰청사이겠습니까. 뉘라 무엇을 말하든 어김없이 분주하실 당신의 일정이 어디 이나마 끝까지 귀 담을 여유를 허락할는지요.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당신은 이미 폭풍의 언덕 위에 서 계시지 않습니까. 흔들려도 기준 잡으려 스스로 회오리치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람의 아들로서 어디 한 군데 허물이 없겠습니까마는 살벌하게 요동치는 이 팔도(八道)에서 펄럭이는 깃발 받쳐든 당신은 그래도 희망입니다. 무너지지 마십시오.
/박종성 서원대 교수·정치학
박종성 교수는 누구?
1984년부터 서원대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는 중견 정치학자. 고상하고 거룩한 글쓰기 보다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가볍게 가늠자 조절하며 전방위 직격탄 쏘기를 더욱 즐긴다. 이제까지 열댓 권 넘게 책을 썼으며 '혁명의 이론사' '박헌영론' '정치는 파벌을 낳고 파벌은 정치를 배반한다' '한국의 매춘' '왕조의 정치변동' '권력과 매춘' '정치와 영화' '한국정치와 정치폭력' '백정과 기생' '포르노는 없다' 등 책 제목을 보면 그가 지닌 관심의 다양성을 알 수 있다.
입력 : 2004.02.28 08:02 58' / 수정 : 2004.02.28 09:44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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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100자평은 총 165건입니다.
정동근(415hannaravictory)
416 68 이땅에 검찰은 죽었고 다만 홍위병들만이 득세 한다.좌익변종급진개혁이 판치는 세상이니 오죽하겠는가.이번 4.15일까지 자신이 모택동을 존경하고 괴정일이 민족의 아바이 같고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숨통 막히는 느낌이 드는 폭도들은 확실히 개나리로 위장 만개하라.정녕 국민들의 표가 불도우저가 되어 확실히 뽑아 갈아엎어주마.대통령과 끄나불들의 꼬락서니가 영낙없는 총학간부로다 (02/28/2004 08:28:55)
오두환(ohdh12)
369 48 송광수, 이나라 최초의 현직 대통령 구속시킨 총장이 되시길... (02/28/2004 08:32:58)
김경호(iroma)
219 19 송광수총장이 그냥 필부로 인생을 마칠지 포청천처럼 역사에 길이 남을 판관이 될지는 그가 노무현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냐 아니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뭘 선택할래? 잠깐의 안위? 불멸의 명예? (02/28/2004 08:43:49)
윤수규(soky)
188 21 이 나라에도 진정한 검찰이 있는가?송광수 안대휘도 별수 없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이니..빨갱이들이 구호인 반미 자주(주체)가 이제 북을 대신해서 우리가 구호를 외치고 있어도 간첩도 잡지 않는 검찰 경찰 국정원-노무현을 비리혐의로 라도 구속시키는 검찰의 모습을 보고싶다 (02/28/2004 08:44:23)
윤지원(az8057)
99 6 송광수님은 희망돼지 입니다. (02/28/2004 08:41:06)
이상원(tkddnjsfhs)
70 1 정말이다. 검찰도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이 나라의 정의를 수호하고 법과 원칙이 바로서서 상식이 통할 수 있는 바른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도 검찰의 역할은 그 만큼 중요하다. 권력의 주구가 아닌 국민의 검찰로써 참다운 모습을 보일 때, 검찰은 신뢰받고 사랑받을것. 정말 희망을 다오. (02/28/2004 09:16:49)
김명준(audrudwltn)
83 14 송총장은 희망입니다..이나라 야당을 해온 사람들에게 서슬 시퍼런 칼날을 휘둘러 마지막 한 사람까지 다 쓸어 냈을때.그 때 당신은 우리 백성들에게 법의 불평등을 논할 거증자료로 삼을 그 희망입니다.이 땅의 우익이 법의 이름으로 스러진후 당신은핏방울 흘리는 칼날을 다시갈고 닦아 좌익을 청산해줄 희망이기도 합니다. (02/28/2004 08:26:14)
이성관(qkfmsthfl)
57 8 교수님, 노쮸구리한테도 한 방 냘려 보내주십시오, 오늘 아침 속이 다 시원합니다. (02/28/2004 09:36:50)
박영조(pppo)
46 10 검찰은 권력의 의지를 쫓아갈 뿐이니 희망을 걸면 곧 후회하리라. (02/28/2004 08:36:00)
김명준(audrudwltn)
39 3 눈먼자 귀막힌자들이 보고 들어 아는일들이 송총장에겐 않들리고 못보이니 장애인들에겐 큰 희망입니다. 떠본댔자 들려본댔자인 세상에 뜨고 귀열릴까닭없음인데..어찌 희망이지않으리오~큰바위 얼굴같겠지요..역사는 그반대로 기록할것이니 그게 무슨연유인지 몰르는 이 없음이 기막힐따름이지요 (02/28/2004 08: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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