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가 우리의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을 문제 삼아 우리 정부를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이슬람 무장 테러조직이 주로 사용하는 ‘성전(Jihad)’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우리 측이 사과하지 않으면 남북대화와 6자회담, 평화협정 회담 등 앞으로의 모든 대화와 협상에서 남측을 배제하겠다고 협박했다.
특히 “청와대를 포함해 남조선 당국자들의 본거지를 송두리째 날려 보내기 위한 거족적인 보복 성전이 개시될 것”이라며, “성전은 혁명적 무장력까지 동원하고 북과 남, 해외에 있는 모든 동포들이 총동원되는 전 민족적이고 전면적으로 진행될 것”임을 밝혔다. 여기서 ‘혁명적 무장력’이란 북한군을 의미한다. 이제는 군대뿐만 아니라, 해외 테러조직까지 동원하여 도발과 테러를 자행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친 것이다.
사상 전례가 없던 국방위원회의 이름으로 초강경 대남 성명을 발표한 것도 주목된다. 국방위는 북한의 유일한 통치자 김정일을 위원장으로 하는 최고의 권력기관으로서 국방은 물론 대외 정책 등 실질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기구이다.
국방위원회의 협박 성명에 이어 김정일이 육해공군 합동훈련을 참관했다고 북한 언론이 보도했다. 김정일이 합동훈련에 참관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며, 더구나 이번처럼 참관 사실을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보복 성전을 거론한 북한이 본격적으로 무력시위에 돌입했음을 보여준다. 북한 언론은 김정일이 군 지휘관과 훈련을 참관하는 사진과 더불어 240mm 방사포 차량이 발사 준비를 하는 사진도 보도했다. 240mm 방사포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북한군 포병화력의 핵심이다.
북한이 이처럼 대남 강경책을 구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 체제 내부의 동요와 정권 유지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화폐개혁 이후 가파른 물가상승과 초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외부 지원이 절실한 북한이 우리 정부를 겨냥해서 강온양면전략을 구사함으로써 ‘대화냐 대결이냐’는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제의한 대화를 거부하면 후회하게 될 것이란 협박 수단이 그들이 말하는 보복 성전인 셈이다.
북한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제의하는 등 유화공세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 하지만, 여전히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무력시위를 통해 한반도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강조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에게 한반도에서 항구적 평화체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절박하다는 점을 인식시키려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의도는 한국의 유사시 대응방안이 자칫 남북 간 전면적 군사충돌로 비화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체제보위 의지를 다지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군사도발과 테러를 자행하겠다는 협박을 엄포용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는 서해에 한정됐던 위협이 지상과 공중으로까지 확대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작년 4월 이후 당과 군의 대남 공작 기구를 통합하여 국방위원회 산하에 정찰총국을 신설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북한이 인민무력부 정찰국까지 흡수하여 정찰총국을 신설한 것은 대남 강경투쟁의 예고편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대청해전 이후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는 발언과 최근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우리 정부 책임론’ 등 일련의 움직임은 계획된 도발로 진행될 수순으로 보인다.
국가안보에 있어 방심은 금물이다. 북한의 국방위 성명을 엄포용으로만 보는 것은 오히려 도발을 부추길 수도 있다. 북한이 군대는 물론 해외 친북 세력까지 선동하여 전면적인 도발을 공언한 이상 우리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 육해공 입체적 도발은 물론 국내외 공관과 주요 인사에 대한 테러에 대비해야 한다. 남한 내 고정간첩이나 북한군 특수부대원에 의한 자살폭탄 공격도 염두에 둬야 한다.
김정일이 진정으로 북한 체제 내부의 동요를 잠재우고 정권 유지에 대한 불안 요인을 해소하고 싶다면, 보복성전이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뿐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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