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긴 아팠나 보다. 전에는 전여옥을 대노무현 투쟁의 선봉장으로 떠받들고 칭송으로
일관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그녀를 비난하고 나선 것을 보면 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평소 점잖빼기로 소문났던 사람들까지 굶주린 하이에나떼를 방불케 하는 기세로 그녀
흠집내기에 일로 매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여름은 본색(本色) 노출의 계절임이
틀림없나 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전여옥은 변절자, 배신자다. 자신을 비례대표로 공천해 주고
대변인까지 시켜줬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서 등을 돌렸으니 전여옥이 배신자
라는 것이다.
그들의 분기탱천한 정도는 문자 그대로 하늘을 찌를 기세다. 그들의 분노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때로는 맹목적인 분노가 시야를 가리기도 하는 법인데 하는
기우를 금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모습에서 냉정함을 찾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쩌면 박근혜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은 왜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의아스럽다. 오죽했으면 전여옥이 이명박캠프에 합류하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
도 한 번쯤은 해봄 직 하지 않은가. 이것이 균형잡힌 사고감각 아닐까?
박근혜를 곁에서 오랫동안 보좌했던 전여옥이 그녀의 곁을 떠나 이명박캠프에 합류한
것은 그녀의 정치적 소신에 따른 결단의 결과다. 박근혜가 전여옥의 정치적 소신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정치인이었다면 이번과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해하지 못할 일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당을 배신하여 탈당하고 외부에서 창당을
감행했던 어쩌면 파렴치한 인물로 비난받아 마땅한 일부 정치인들의 배신행위에
대해서는 마냥 관대하기만 했던 그들이 절대군주도 아닌 일개 정치인의 곁을 떠난
사람을 향해서는 혹독한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박근혜는 민주정당의 대표를 지냈던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사회 공당의 당원이나 지지자들에게는 당을 위하여 헌신해야 할
의무나 책임이 있을지 몰라도 같은 당원에 지나지 않는 당대표에게 반드시 복종하고
충성을 바쳐야 할 의무는 없다. 강재섭 대표을 대하는 박근혜캠프의 태도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당원과 그 당 지지자들에게는 대선후보 선호 또는 지지에 대해 독자적
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어 있다. 도대체 왜 전여옥이 박근혜만을
지지하고 그녀에게만 충성을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충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는 모든 사람들이 충성을 받쳐야 하는 절대군주의 지위에 있는 인물이 아니다.
더구나 박근혜는 무결성 정치인이라 주장하는 그들만의 확신에는 타당한 근거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한나라당 당원이 박근혜에게서 등 돌리는 행위를 변절이라 매도하는 것은 전근대적
사고에 찌들은 사람들에게서나 찾아볼 법한 일이다. 모든 한나라당 당원들에게는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권리가 당연히 부여되어 있다.
전여옥의 이명박캠프 합류의 변은 이랬다.
"정권교체를 위해 나를 제물로 바칠 각오"
"이 후보를 돕는 길만이 정권교체의 지름길이라고 확신한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국민을 구할 이가 누구인가 고민했다"
"결론은 이 후보였다"
이런 말도 했다.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국민이 받들고 섬길 대통령이 아니라 나라 일을 당차게
해낼 경험많은 일꾼"
우리는 자신의 신상에 이롭지 않은 일이 생길 수 있음을 알면서도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던지는 사람을 충신이라고 부른다. 이에 반해 사욕의 충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자격미달인 주군에 충성하고 그의 전위대 노릇을 하는 자들을
간신이라고 부른다.
만약 전여옥의 결단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리고 결과적
으로 그녀의 판단이 옳았다면 그녀는 충신의 반열에 오르기 충분한 자격을 갖춘
정치인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집단으로 매도했던 자들은 간신배,
소인배들로 기록될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참고 기다리면 그녀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게 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논리를 들어 그리고 치졸한 적개심과 분노의 포로가 되어
맹목적으로 전여옥을 비난하는 몰염치한 행위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때로는 창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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