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내 지지도가 50%였는데..."
[오마이TV 2006-12-05 13:45]
[오마이뉴스 김윤상] 이회창 , 대선 이후 4년 만에 당 행사에서 강연
"햇볕정책을 옹호하거나 표를 얻기 위해서 김대중주의에 아첨하고, 호남에서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정말 잘못된 것이다."
2002년 대선 패배 이후 정계를 은퇴한 이회창 한나라당 전 총재가 만 4년 만에 당에서 주최한 공식 행사에 나와 던진 첫 번째 메시지는 "표를 얻기 위해 호남과 김대중주의에 아첨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회창 전 총재는 5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한나라 포럼' 초청 강연에서 "한나라당이 햇볕정책이나 김대중주의에 대해서 표를 얻기 위해 아첨하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이 호남표를 의식해서라고 이해는 하지만, 호남에 가서 햇볕정책은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오히려 노무현의 포용정책이 망쳐놨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그것은 지역주의에 편승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총재는 이어 "표를 얻기 위해서 잘못한 문제도 있지만, 더욱 큰 문제는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이념이 무엇이냐"며 "다시는 이런 얘기가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북핵 사태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이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경고한다"며 "국민을 될수록 재앙에서 멀리 인도해야 할 국가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국민을 대재앙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말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2002년 대선 패배로 자책감에 사로잡혀"
이회창 전 총재는 이날 강연 첫 머리에서 4년 전 대선에서 패한 뒤 눈물을 흘리며 정계은퇴 기자회견을 했던 당시 소회를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전 총재는 "대선이 끝난 다음날 정치를 떠나는 마지막 기자회견을 하다가 앞에 있던 당원동지들 여러분들이 축하고 처져 있는 것을 보고 정말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고, 너무나 큰 슬픈 생각이 밀려왔다"며 "그래서 제가 제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발이 부르트도록 뛴 여러분에게도 미안하고 송구하지만 저와 당을 지지해주신 그 많은 국민들께 너무나 얼굴을 들 수 없고, 또 미안한 생각에, 그 회환에 가슴이 미었던 것 같다"며 당시 심정을 회고했다.
그는 특히 "이제 노무현 정권이 일종의 정치적 파산 상태에 와 있는 것 같다"며 "능력이 없고, 미숙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도대체 성의있게 진지하게 정치를 하겠다는 의욕조차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비판했다.
"남은 임기를 채울지 어쩔지 모르겠다는 식의 그런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모든 국민들이 한없는 좌절과 절망과 회한에 사로 잡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보면서 또 한번 이게 모두다 2002년에 제대로 하지 못하고, 결국 패배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자책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 전 총재는 또 "흔히 말하듯 패자에게 조용한 후퇴는 허용되지 않는 것 같다"며 2002년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심정도 언급했다. 이 전 총재가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선 후에 몰아닥친 대선자금 사건으로 또 한번 당과 여러분에게 정말 고통과 깊은 상처를 안겨 드렸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잘못된 일이다. 또 모든 책임이 총재였고, 후보였던 저에게 있는 것이다. 저는 아무 말도 아무 변명도 해명도 하지 않을 것이고, 다만 국민과 당원동지 여러분께 미안하고 송구스러운 마음만 간직하고 있다."
"한때 내 지지도가 50%에 이를 때도 있었다"
이 전 총재는 이어 "덕담도 좋지만 시중에 도는 얘기도, 좀 뼈아픈 얘기도 해드리는 것이 오히려 여러분께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당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두 번이나 지고, 과거부터 당의 체질이 안되게 돼 있고, 불임정당이다라는 말은 옳지 않다"며 "지나치게 자기 비하를 하고 자기 열등감에 빠진 나머지 자긍심과 긍지를 가져야 할 자기 과거마저 부정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천박한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재는 "때로는 제 지지도가 50%에 이를 때도 있었다"며 2002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를 분석한 자료를 소개하기도 했다.
"지난 2001년 12월부터 2002년 12월, 선거 있을 때까지 1년 동안 후보에 대한 지지도, 여론조사를 3개 내지 4개 언론, 신문 방송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저와 노 후보와의 지지도 차이는 상당한 격차로 제가 우위에 있었다. 때로는 제 지지도가 50%에 이를 때도 있었다.
그런데 두 번 노 후보의 지지도가 반전 상승해서 저보다 높아졌다. 한 번은 2002년 3월에 광주에서 여당 경선에서 노 후보가 이겼을 때, 소위 노풍이 불기 시작했을 때 급격하게 반전 상승해서 약 두 달간 유지되다가 5월에 다시 떨어졌다. 두 번째는 11월 중하순에 오르기 시작해서 반전하고 그것이 바로 12월에 투표율로 이어졌다. 11월에 무슨 일이 있었나. 11월 25일에 노 후보와 정몽준 후보 사이에 깜짝 경선해서 단일 후보가 됐다.
또 바로 직전 11월 20일에 소위 미군 장갑차 사건에 무죄 선고가 되어서 반미 감정에 불을 질렀다. 또 12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15일 경부터 시작해서 12월 투표일 직전까지 저에 대한 기암건설이니 뭐니 하는 의혹 조작 사건이 여당에서 집중적으로 언론에 보도하고 심지어 저희 집사람을 검찰에 고발도 했다."
그는 "대선이 끝난 후에 '한나라당이나 이회창 후보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등 여러가지 원인 분석이 나왔다"며 "이런 분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추상적인 시대변화 같은 것보다 깜짝쇼나 네거티브 캠페인이 직접적인 패인의 원인이 된 것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나폴레옹이 '아우스트레스 전투'에서 제시간에 도착한 지원부대 때문에 승리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선거 결과나 선거 원인을 합리화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정확히 알아야 다음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친북좌파들이 판을 치고 득세하고 심지어 간첩까지도 활개치고 다니는 사회 변화 속에서 그래도 한나라당이 제자리에 굳건히 지켜왔기에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정체성이 오늘 이만큼이라도 살아있었고, 지킬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특히 "그렇다고 안이하게 이대로 가면 된다는 낙관론도 아주 잘못된 것"이라며 "당의 지지도, 후보의 지지도는 한 갓 몇가지 깜짝쇼나 네거티브 캠패인에 의해서 얼마든지 뒤집어지고 결과가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야말로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당원이나 국회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선거 하듯이 발로 뛰고, 피눈물 나게 땀을 흘려야 한다. 하면 되는 것이다. '뭐, 대선 안되도 국회의원 하면 되지' 이런 생각 가지면 절대 될 수 없다."
그는 최근 한나라당 대권주자들간의 경쟁이 과열 양상을 빚는 것에 대해서도 "경선에서 승리하면 다 된다는 식으로 경선에 너무 올인해서 서로 이전투구 하는 것은 절대 좋은 게 아니다"며 "아무쪼록 아름다운 경선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전 총재는 또 "한나라당이 분명한 정체성과 가치관을 가진 정당으로 인식됐으면 좋겠다"며 자유민주주의 신념과 가치를 강조한 뒤, "노무현 정권이 왜 이렇게 안되나. 미숙하고 능력이 없는 부분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자유의 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노무현 정부는) 큰 정부가 (시장에) 개입, 규제해서 흔드는 것을 경제의 코드로 생각한다"며 "이번 부동산 파동으로 (그런 정신이) 나타났다. 가진자 때려서 고통줘서 집 내놓게 해서 부동산 값 잡겠다는 것, 전형적인 자유의 정신을 무시한 코드 정치다"라고 성토했다.
"정계복귀? 더 이상 언급 않겠다"
한편 강연이 끝난 뒤, 기자들로부터 "정계에 복귀한 것이냐?"는 질문을 받은 이회창 전 총재는 "그 문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실제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것에 다 묻히고, 그 얘기만 토픽이 된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와 관련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은 "이 전 총재의 기본 생각은 '할 말은 하겠다, 행동도 하겠다, 그것이 정치는 아니다, 다만 정치 재개로 오해를 받아도 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측근은 이어 "이 전 총재는 좌파정권이 더 이상 재집권하는 것은 안되기 때문에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비좌파연합도 만들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강연회에는 당원 200여명을 비롯해 이재오 최고위원, 고흥길, 김무성, 이규택, 맹형규 의원 등 당 총재 시절 측근 의원 10여명이 참석했다.
<글 - 최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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