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추연 > 자유게시판 > [당선무효] “서울은 평양과 비슷하다”

“서울은 평양과 비슷하다”
유한진의 폴러첸 동행기 안녕하십니까? 독립신문 국제부의 유한진 기자입니다. 저는 노베르트 폴러첸씨의 이번 한국방문중 여러 행사에 그와 동행했습니다.

- 국정원 국정감사가 있었던 10월 1일 저녁에는 폴러첸씨, 그리고 폴러첸씨와 함께 북한에서 일한 독일인 친구 브래스키씨와 같이 여의도에서 열린 한미동맹 50주년 기념식에 참여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신문 또는 TV를 통하여 폴러첸씨에 대하여 많이 보고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제가 보고 느낀 폴러첸씨에 대하여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국내에서 폴러첸씨의 안전은 심각하게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그는 휴대폰도 컴퓨터도 없이 다닙니다. 외부에 알려지면 그의 신변을 위협할 수 있는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제가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인천공항에서의 인터뷰

제가 처음 폴러첸씨를 만난 것은 9월말 인천국제공항에 마중나갔을 때 입니다. 그날 민주참여네티즌연대(www.fnkorea.org) 이준호 대표와 모 신문사의 기자 두 분도 동행했습니다.

우리 일행을 보자 폴러첸씨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더군요. 그는 하늘색 셔츠,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공사장에서 신는 장화를 신고 있었습니다. 그가 외모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폴러첸씨는 일본에서의 여행으로 지친 기색이 역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이 인터뷰 요청을 하자 힘이 솟는 듯 식사도 마다하고 인터뷰에 응하는 열의를 보였습니다.
우리는 공항의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헌 가방에는 일본에서 발행한 "북한을 너무 많이 안 의사"(北朝鮮を知りすぎた?者)라는 책 시리즈 3권, "미친 곳에서 쓴 日記"(월간조선사), 그리고 자신의 동독 친구가 북한에서 찍은 사진들로 만들어진 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번 책 출간으로 돈이 좀 생겨서 북한주민들을 돕는데 쓸 수 있다며 흐뭇해했습니다.

그는 어떠한 질문에도 마다하지 않고 응해주었고 모든 질문에 매우 자세하게 대답하였습니다.

강북 스타박스에서의 만남

9월 29일에는 강북에 있는 한 스타박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이날도 여러 인터뷰가 있다며 자신이 쓴 책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어린이들의 사진을 넣은 가방을 매고 스타박스에 왔습니다.

그곳에는 민주참여네티즌연대의 이준호 대표도 동석했습니다. 폴러첸씨와 이 대표는 북한에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다시 한번 계획하고 있답니다. 지난번에는 경찰이 집회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았는데 이번에는 어떤 이유를 들고 나올까 궁금합니다.

이틀 후 있을 한미동맹 50주년 기념식에 대하여 얘기 나누다가 문뜩 저는 그날 넥타이를 매야 한다는 것을 알고, "넥타이 매는 게 싫다"고 말했습니다. 폴러첸씨는 자신도 넥타이 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유인즉 넥타이를 매면 뇌로 가야할 피가 잘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계속 넥타이를 매고 생활하다보면 뇌의 혈액순환이 안 좋아져 목도 붓고 머리도 나빠진답니다. 저는 '의사다운 사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들은 "아∼ 그래서 정치가들이 그렇게 그릇된 판단을 자주 하는구나"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습니다. 그는 넥타이를 매야할 일이 있으면 들고 다니다가 마지막 순간에 맨다고 말했습니다. 그것도 맨 윗 단추를 끼지 않은 채로... 넥타이도 헐렁헐렁하게 하고요.

제가 폴러첸씨에게 "자신의 건강에 신경 쓰면서도 목숨은 아끼지 않는 것 같아 아이러니 하다"고 말하자 그도 정말 그렇다며 웃었습니다.

국정원에서의 비공식 청문회

폴러첸씨는 10월 1일에는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감에 비공식 증인으로 참석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갔습니다. 수서역에서 만날 때 폴러첸씨는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자 온화하게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다리는 좀 어때요? (hi, how is your leg?)" 라고 물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다리를 다쳐서 요즘 목발을 짚고 다니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의사로서의 본능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통증은 거의 없고 젊으니까(참고로 저는 만 25세 입니다) 곧 나을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택시를 타고 국정원 입구에서 내려 국정감사가 열리는 곳까지 걸어갔습니다. 마침 옆 도로에는 국군의 날 50주년 행사를 준비하는 탱크가 여러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폴러첸씨는 그것을 보더니 "여긴 마치 평양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어떤 점에서 그런가"라고 물었습니다. 혹시 일본에서도 평양같이 느꼈었냐고... 폴러첸씨는 일본에서는 평양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방금 탱크가 지나간 광경뿐만 아니라 서울의 일반적 무드가 그렇게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평양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울에서도 자유롭지 않다고... 어떤 면에서는 평양에서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한 예로 그는 한국에 있을 때에는 절대로 환자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치료해준 한국인이 치료가 잘못됐다고 트집을 잡아서 자신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다고... 또 한국에서는 절대로 차를 몰지 않는다고도 말했습니다. 자신이 운전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일부러 자신의 차에 부딪쳐서 다칠 수 있다고...

이런 말을 들으니 저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부끄럽고 화가 났습니다. 소위 민주주의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인권을 위해 일하는 그가 이렇게 신변의 위협을 느껴야하다니... 북한의 비밀간첩 송두율이 대한민국에서 민주인사로 불리면서 활보치고 다니는 것과 너무 비교가 되더군요.

이날 국정감사가 2시에 시작한다고 해서 겨우 겨우 시간에 맞춰 갔더니 오전 일정이 늦게 끝나서 오후에 예정된 국정감사는 한 시간 정도 미루어졌다며 기다려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폴러첸씨는 이 말을 듣고 그럴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폴러첸씨는 평소 기자들과 잦은 접촉을 갖는 것으로 아는데 오늘은 아무도 폴러첸씨를 동행하지 않은 것이 이상해서 왜 그런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이미 이런 일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자신이 한국에 와서 뭔가를 하려고 할 때마다 항상 여러 가지 방해공작이 있었다고...

모든 기자들이 국군의 날 행사를 취재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오늘 자신을 국정감사에 부른 점, 그리고 예전부터 자신이 무슨 행사를 벌일 때마다 서울 시청이 같은 시간에 기자회견을 개최한 점 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3시가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우리들은 그냥 나와 버렸습니다.

한미동맹 50주년 기념식

국정원 국정감사가 있었던 10월 1일 저녁에는 폴러첸씨, 그리고 폴러첸씨와 함께 북한에서 일한 독일인 친구 브래스키씨와 같이 여의도에서 열린 한미동맹 50주년 기념식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참전국들의 대사관 관계자분들과 전(前) 유엔대사,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님 등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셨습니다. 그곳에서 폴러첸씨는 일약 스타였습니다. 여러 참석자들이 그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고 존경을 표했습니다. 북한주민의 인권을 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하는 폴러첸씨에게는 좋은 기회였죠.

행사중 그는 약 5분간 마이크를 잡고 북한주민들의 실태와 그곳의 인권상황을 얘기하며 많은 분들이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국제사회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랍니다.

정작 민족주의를 외치는 일부 몰지각한 대한민국국민들은 북한 인권문제에 아무도 나서지 않는 반면, 자신의 전재산을 털어 북한주민을 구출하는데 모든 것을 헌신하는 폴러첸씨를 보면서 민족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감성주의에 빠져 무작정 민족주의를 외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습니다.

유한진 기자 [email protected]

45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