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석학 <기 소르망>은 그의 저서 ‘신국부론’(1986)
에서 1960년대 저주받은 한 나라’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국토는 작고 인구는 많다. 자원은 없다. 국민의 80%는 문맹이고 외국인과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식민 착취, 국토 분단, 내전 등으로 200만 명이 죽었다. 예산의 3분의 1을 국방비로 쓴다. 1961년까지만 해도 전문가들은 이 나라가 ‘끝났다’고 했다.”
<기 소르망>은 그렇게 기술한 뒤 “74개 후진국 명단에서 1인당 국민소득 60위였던 이 나라가 25년 뒤에는 9위가 됐다.”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다시 25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기 소르망>에 의해 “외국인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나라”로 기술됐던 그 나라는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해냈다. ‘1960년대 저주받은 나라’로 표현됐던 그 나라는 내년에 세계경제 질서를 주도해 갈 G20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그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G20, 즉 주요 20개국 정상회의는 지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국제금융 현안과 특정 지역의 경제위기 재발 방지 등에 대해서 선진국과 신흥 개발도상국 사이 의견을 나누기 위해 1999년 9월에 창설된 세계 최고의 국제경제협력 협의기구다.
이 기구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 7개국과 한국, 러시아. 중국 등 12개 신흥 개발도상국, 그리고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 구성돼 있다. G20은 ‘주요 20개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90%를 차지하는 가운데 세계인구의 3분의 2가 여기에 속해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하다.
이렇게 막강한 세계적 기구의 정상회의가 내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몇 가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50여 년 만에 선진국 문턱에 이른 한국이야말로 신흥국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하면서 선진국들의 불만사항도 동시에 고려하여 양쪽 입장을 조율해낼 수 있는 최적의 나라라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세계무대에서 선진국과 신흥경제국 사이 중재자와 조정자적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왔다.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두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가 G20의 최대 목표인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한 대표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8년 외환위기로 경제가 곤두박질쳤다가 단시일 내에 회복된 뒤 지난해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도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그로 인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는 물론 위기에 처한 매개 나라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다.
한국이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게 된 세 번째 이유는 지난해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제1차 G20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준 주도적 리더십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그 동안 G20 정상회의 의제선정과 공동성명 작성 과정에서 주도적인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특히 그는 지난 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를 저지하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G20 정상회의에 크게 기여해왔다.
우리나라의 내년 G20 정상회의 개최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지난날 국제기구의 원조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까지 받았던 나라가 세계 유지들의 모임인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정도로 세계 중심적 국가로 올라서면서 우리의 외교사에 새로운 장을 펼치게 됐다는 데 의미가 크다.
내년 G20 정상회의 개최는 우리나라가 드디어 국제사회의 핵심그룹에 입성하면서 유사이래 처음으로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중심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우리나라는 19세기말 국제정세에 휘둘리기만 했던 변방국가에서 이제 21세기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세계 중심부의 당당한 일원이 됐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단군이래 처음으로 세계적 열강들이 모이는 국제회의를 개최함으로써 국제적 신인도 제고도 함께 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미국 등 G8(서방 7개국＋러시아)이 좌지우지해온 국제경제질서를 우리가 주도해감으로써 국가의 격이 한 단계 높아진다.
내년도 G20 공동의장국인 우리나라가 정상회의까지 개최하면 우리는 세계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서 중재자적 역할을 하게 돼 국제적 위상이 수직상승하게 된다. 작지만 무서운 이 나라가 참으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1948년 무역규모 3천만 달러 수준으로 아프리카 카메룬의 2분의 1, 토고의 2배 수준에 머물며 세계 100위권에 지나지 않던 우리나라는 지난해 7천억 달러를 넘어 세계 교역규모 11위의 무역강국으로 떠올랐다. 올해는 8천억 달러를 달성하면서 10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좁은 국토라는 한계를 넘어 광복 후 60여 년 동안 수출증대를 위해 온 국민이 피와 땀을 흘린 노력의 결과다.
일제 35년의 질곡에서 벗어나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공장이라고는 신발공장과 방앗간이 고작이었던 우리였다. 그랬던 우리가 건국 60여 년 만에 세계적 수준의 첨단 정보통신산업을 거느리며 선박과 자동차, 반도체 등에서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산업국가로 우뚝 서 마침내 G20 정상회의까지 개최하게 되었다.
세계 역사상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 정도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 나라는 우리 말고 일찍이 없었다. 땀 흘려 산업화를 이루고 피 흘려 시민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영국과 프랑스가 300년, 미국이 200년, 그리고 일본이 100년 걸린데 비하면 우리는 60년 남짓 동안에 300년 치의 피와 땀을 흘린 것이다.
그러나 눈부신 경제발전과는 달리 정치발전이 뒤처져 사회통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국력낭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최근 미국의 정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가 인터넷 판에서 ‘세계에서 가장 질서 없는 의회’5개를 선정하면서 그 첫 번째로 소개된 것이 우리의 국회였다.
우리나라 정치판의 핵심인 신성한 국회 안에 공사판의 해머와 전기톱이 등장하여 의사진행을 방해하고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주먹질과 패싸움이 난무한다. 그리하여 얻어진‘세계 1등 추한 의회’라는 정치적 후진성 타이틀이 2차 대전이후 경제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라는 찬사를 헛되게 하고 있다. 이래서 되겠는가.
일찍이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21세기는 태평양시대의 개막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래학자 <허만 칸>은 “서양 물질문명은 정신문화의 본고장인 동방으로 돌아간다.”는 이른바 <동양회귀설>을 주장하면서 “한국이 태평양시대의 주역, 세계의 중심 국가로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얼마나 뿌듯한가.
우리나라가 내년에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을 계기로 미래학자들의 예언이 어쩌면 현실로 나타날 것만 같다. 그러나 위정자들이 세계 중심 국가로 우뚝 선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은 정치발전을 이룩하여 국민통합을 꾀하지 못하면 그런 예언들은 그냥 예언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나라 위정자들이 소탐대실하는 닫힌 정치가 아니라 열린 정치를 펼쳐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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