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과 국정운영스타일

1 - 마이너스형

이승만 대통령의 플러스형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상태에서 5·16 쿠데타를 통해 등장한 지도자가 전형적인 마이너스형 리더십의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이 내성적이며 마이너스형 리더십의 소유자라는 점은 그의 전기 박정희의 <국가와 혁명과 나>, 조갑제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등 주위사람 석광수, 조증출들의 증언에서 충분히 입증된다.

그의 성격에 대해 내성적이며 뭔가 골똘히 구상하는 것 같은데 밖으로 잘 드러내지 않음 침착하고 실천력이 있고 결단력이 빠르다.

그의 힘은 완력과 침묵에서 우러나온다라는 증언들이 많다. 말수가 적고 신중하며 냉철한 Jung의 내향형은 마이너스형 리더십의 주된 특징이다. 마이너스형의 또 다른 특징은 과묵하고 대중연설을 기피한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이 공·사석에서 검은 선글라스를 즐겨 쓴 것도 자신을 은폐하려는 심리적 보호본능과 더불어 대중 앞에 나설 때의 부끄러움과 불안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박 대통령은 강인하고 냉철한 성격이지만, 군대시절 상관 앞에서 브리핑할 때 손을 떨었다고 한다.

굳게 다문 입과 툭 튀어나온 광대뼈, 짙은 선글라스에 집념과 오기가 가득 찬 듯한 표정은 마이너스형 지도자의 상징처럼 보인다. 매우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많은 식솔, 그리고 힘들었던 군대생활이 내향적인 마이너스형 기질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업무처리 과정에서도 치밀하고 꼼꼼하게 챙기는 전형적인 마이너스형이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체득한 남성적 세계관은, 말수가 적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강한 남성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런가 하면,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일협정을 체결했고, 온갖 비판을 감수하며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건설하는 등 오기와 뚝심을 보이면서도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대신 참모들을 조용히 불러 강하게 밀어붙이도록 독려하는 스타일이었다.

박 대통령이 마이너스형 지도자라는 사실은 그가 요란한 플러스형 참모를 선호한 데서도 드러난다. (뒤쪽·참모유형 참조.) 유신헌법을 입안한 중앙정보부 간부들이 청와대를 방문해   설명하면, 박 대통령은 자기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었으며 때때로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겉으로 과묵하고 행정적인 유형의 지도자일수록 국가통치 과정에서 선동적이고 공격적인 플러스형 참모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그가 바로 이후락 비서실장이었다. 플러스형 참모인 이후락 비서실장과 마이너스형인 박 대통령은 서로 잘 맞았다. 이 실장은 박 대통령의 속마음을 미리 간파하여 돌격대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유신정권 말기 차지철 경호실장도 과격하고 직선적 성격의 전형적인 플러스스타일이었다. 차 실장은 당시 민주화시위가 격렬할 때마다 걸핏하면 까짓것 탱크로 밀어버리지! 라는 말을 곧잘 했다고 한다. 1979년 4월 차 실장은 여당 중진들과 사적으로 만난 자리에서도 유신에 반대하는 학생이나 재야는 한꺼번에 쓸어버리면 아무 문제도 없다. 유신정권은 만만한 정권이 아니다. 청와대에 수소폭탄을 투하해도 끄떡없다 라고 큰소리쳤다고 한다.

외향적 성격인 차 실장은 내성적인 마이너스스타일인 박 대통령의 속마음을 미리 알아차려서 일을 해치우는 선제공격형 참모였다. 겉으로 말을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는 마이너스스타일의 권력자에게 차 실장처럼 미리 알아서 챙겨주는 플러스형 참모는 요긴한 존재이다.

박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는 겉으로 보기에 마이너스스타일이지만, 행동방식은 플러스스타일이었다. 역대 어느 대통령 부인보다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펼쳤고, 남편에게 자기 소신을 거침없이 밝혀 종종 다투기도 했다. 만약 육 여사가 내성적이고 말이 없는 마이너스스타일이었다면, 박 대통령과 오히려 충돌이 잦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1974년 육 여사가 사망한 이후부터 우울증(depression)과 같은 심리적 동요현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장장 18년에 걸친 장기 집권으로 말미암아 국민들로부터 마이너스형 리더십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2 - 행정가형

행정가형 권력자의 주된 특징은 기존 제도와 정치권을 혐오하고 현실타파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행정은 있어도 정치는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치 영역보다 행정 영역에 주력하였다. 그는 20여년 간의 군조직 운영경험을 토대로 집권 18년 동안 조직적·획일적 통치스타일을 발휘한 행정가형 지도자로서 박 대통령은 군 조직을 운영해본 경험을 가진 행정형의 지도자로, 그의 통치기술과   지배도구는 군(軍)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기성 정치인과 정치권을 혐오하고 불신했다. 덕분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인재등용이나 적재적소 임용 측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박정희 정권의 최장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은 박 대통령은 말을 내세우지 않았다. 대신 실무자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심사숙고해서 정책을 결정하되, 일단 정책이 결정된 후에는 강력하게 밀어붙였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과묵함과 실무전문가 중용, 신중한 결정, 강력한 추진력은 Lasswell의 행정가형 지도자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매사에 주도면밀하게 결말을 짓고 세부사항까지 챙기는 강박적 성격(compulsive character)   은 행정가형의 주된 특징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와 내외 정책 등 국정운영 과정에서 치밀하고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행정가형 스타일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1968년 12월 1일(월요일) 일기장에 만년필로 꾹꾹 눌러쓴 시(詩) 건설하는 아침의 한 대목은 행정가형으로서의 심리상태와 성격유형을 잘 보여준다.

(1행) 일요일 이른 아침인데도 햄머소리 요란하게 창가에 들리고, 길가는 사람마다 발걸음이 빠르기만 하다. (2행) 이 강산 도처에서 건설과 생산과, 또 생각하고 궁리하고 창조하는 인간의 이룩함이 물결치고 있다. (3행) 붉은 침략자들 무찌르기 위한 젊은이들의 눈동자가 휴전선 150마일에서 태백산 봉우리에서 샛별처럼 반짝이고 날카롭게 응시한다.

첫 번째 행에서는 당시 근대화 물결과 경제 분야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두 번째 행은 새마을운동과 같은 국민적 캠페인을, 세 번째 행은 분단상황과 반공주의를 보여준다. 마치 가계부를 작성하는 가정주부처럼 일기장과 메모에 숫자까지 곁들여 꼼꼼하게 기록한 박 대통령은 수시로 작은 수첩을 꺼내들었고, 거의 매일 비망록을 작성했다.

미심쩍은 서류 내용은 반드시 확인하고 넘어갔으며, 심지어 맞춤법이 틀린 것과 오자(誤字)를 찾아내 정정할 정도였다. 이러한 행정가형의 특징은 역시 깨알 같은 메모로 유명한 김대중 대통령의 스타일  과 흡사하다. 반면 김영삼 대통령은 민정당 대표 시절 노태우 대통령과 면담할 때 메모 좀 하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할 정도로 행정가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박 대통령은 연설할 때 미사여구(美辭麗句)나 제스처(gesture)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따분하리만큼 차분한 어조로 읽는 전형적인 행정가형 지도자였다. 그의 유별난 정리벽(整理癖)과 완벽주의(perfectionism)도 행정가형의 특징이다.

박 대통령은 군인시절 자신의 복장은 두말할 것도 없고 책상서랍이나 벽장 등 주변 사물에 대해 한 치의 빈틈도 없이 반듯하게 정리하는 습관으로 유명했다. 대구사범학교 기숙사 생활 때도 후배들이 급한 김에 이부자리를 제대로 개지 않고 나가면 아무리 친하고 귀여워하는 후배일지라도 호통을 쳤다고 한다. 연구자가 만나본 박 대통령의 둘째딸 근영씨도 옷매무새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고, 식사 때는 똑바로 정좌해서 먹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었다.

Freud의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이러한 정리벽은 불안신경증의 하나인 강박감이며, Jung의 유형론에 의하면, 열등기능이 너무 과보상되어 그 기능을 주기능으로 갖고 있는 사람보다 더 철저하고 완전무결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정리벽의 긍정적 측면이 리더십 발휘과정에서 빈틈없고 체계적인 업무 스타일의 행정가형으로 표출되었으며 새마을운동과 같은 성과를 맺었다.

박 대통령은 인재 발탁과 운용에 두루 능했던 인사 전략가로서, 군부를 배경으로 한 직계 인사들에게는 정치를 맡기고, 전문분야에는 관료들을 대거 등용하였다. 정치와 행정을 분리하여 정국을 운용했던 특유의 국정운영전략이다. 박 대통령은 강인한 외모에서도 나타나듯이 오기와 집념으로 똘똘 뭉친 성격이었고, 세심한 주의력과 권위주의적 기질을 가진 지도자였다.

이러한 지도자의 특징은 추상적인 선동가형과 달리 빈곤극복과 근대화·공업화라는 구체적·실용적 정책을 추진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박 대통령은 짧은 교사생활을 정리하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1963년 군복을 벗을 때까지 23년간 군인의 삶을 살았다.

식민지 시대 일본의 군사교육이 하면 된다!는 식의 군인정신과 권위주의적 군사문화 박정희 정권의 등장과 함께 우리 사회에 밀려온 것은 이른바 군사문화였다. 빨리 빨리!와 안 되면 되게 하라 요령껏!으로 압축되는 3대 군대식 구호는 당시 낙후하고 느슨했던 국민정서를 강하게 깨우쳤다. 군(軍) 리더십은 한마디로 하라면 해야 하는 상명하복의 리더십이다.

군이라는 조직 자체가 사회에서 일정부분 격리된 독립적 조직체인데다 국가안보라는 특수목적을 위한 집단인 만큼 위계질서가 확고해야 한다. 요컨대, 군대조직의 대표적인 세 가지 특성으로 엄격한 위계질서와 집단성, 목적성을 꼽을 수 있다.

군사 전문가들은 군조직의 정의를 계급과 직책 및 권위를 바탕으로 조직된 전쟁 억제집단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군조직은 상명하복의 관계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지휘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권위주의적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외에도 군조직은 생사를 함께하는 전쟁억제집단이라는 점에서 인간적 유대가 일반 조직보다 강하고, 구성원들이 다양하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군사문화는 근대화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국민들이 돌격 앞으로!라고 외칠 수 있는 국민적 일체감과 함께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군사문화는 박 대통령에 이어 군인 출신인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이 잇따라   집권하면서 사회 전역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특히 전두환 대통령은 7년 동안    강권통치를 실시하면서 국민과 야당을 전형적인 군대식 리더십으로 통치하여 군사 문화의 뿌리를 우리 사회에 깊이 각인시킨 주역이다.

군사교범이 제시하는 다섯가지 군(軍)리더십의 특징을 보면, 첫째, 특수상황에 대한 강력한 대처능력이다. 둘째, 실천력이 중요하다. 군대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오로지 행동을 통해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셋째, 결과중시주의다. 만약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군조직의 궁극적인 목표는 오직 승리이므로 결과가 절대적이다. 넷째, 신속성이다. 동시다발적인 특수상황에서 신속히 처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섯째, 견고성과 강인성을 전제로 한다. 강한 군대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군조직의 불문율이다.

그의 행정가형 리더십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 요인은 군대경험이다. 일본육사생도 시절 박 대통령은 일본의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이른바 쇼와유신(昭和維新)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그로부터 40여년 후 그와 유사한 유신체제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에게 외향적인 선동가적 기질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먹음직스러운 김치를 거침없이 손으로 집어 고, 닭고기를 두 손으로 잡고 뜯어먹는가 하면, 막걸리와 맥주를 섞어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호탕한 기질도 있었다. 이는 Jung이 지적했듯이, 모든 사람에게는 외향적·내향적 측면이 공존하고 있지만, 다만 어느 한쪽의 성향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3 - 과업지향형

박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과업지향성이 두드러진 정치지도자였다.

과업지향적 리더십은 조직의 효율성과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목표달성형이나 과업추진형 리더십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는 인권(人權)을 희생시키고 실적(實積)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박 대통령이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인 한일협정과 베트남 파병도 과업지향형 리더십의 산물이다.

새마을운동과 근면·자조·협동 정신도 단순히 수사적 차원을 넘어 집단적 활동으로 옮겨져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역시 과업추진형 리더십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5·16 쿠데타 당시 직속상관이던 장도영 장군을 냉정하게 축출하고, 그토록 충성을 바쳤던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을 제거한 과정을 보면, 사람보다 과업을 중시하는 냉철한 과업지향적 성향이 유감없이 드러난다. 과업지향적 리더십이 왜곡되어 발휘되면 결과지상주의·물량중심주의 (K. Marx는 물질지상주의를 페티시즘(Fetishism)이라고 표현했다. 인간사회에서 사랑·자비·존중의 가치가 무시되면, 물질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 E. Fromm의 주장이다) ·능률주의·경제제일주의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권력지향주의와 행정만능주의 풍조를 낳아 정치적 퇴보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과업지향형 지도자는 가시적인 정책목표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목표지상주의적인 관료주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성취와 업적을 중시하는 과업지향적인 체제창조형 통치자라고 할 수 있다.

유신시대가 등장하면서 권력의 1인 집중현상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났다. 시골 뚝배기처럼 강직했던 박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한 이후부터 말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대통령은 하늘에서 내려주는 자리야!라고 하거나 학자들이 뭘 알아. 왜 국회에서 떠드는 거야라며 예전에는 듣지 못했던 격한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영향력이 해당 부처를 압도하기 시작했고, 중화학공업 정책의 추진을 경제기획원이 아닌 청와대 직속 중화학공업추진위원회 기획단이 맡는 식이었다. 마침내 모든 입법·사법·행정 결정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권력 집중현상은 앞에서 말했듯이 정책결정과 수행과정에서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수단이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정부·정당·의회와 같은 국민 대표기구의 제도적 자율성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곪을 대로 곪은 권력 핵심부의 염증이 10·26 사태라는 형식으로 터져버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박 대통령은 매사에 주도면밀하고 사소한 것까지 챙기는 내향형의 성격을 가진 과업지향적 지도자였다. Meyer와 Kelly의 유형분석에 의하면, 이러한 유형은 중앙집권적이며 1인 중심적 권위주의를 초래하기 쉽다.

[최진 교수]

-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
- 고려대학교 행정학 박사
- 미 남가주대(USC)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