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인간,  잡종인간. 

10 여년 전,설악산으로 등산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물론 혼자였습니다.

설악동에서 시작해,천불동 계곡을 거쳐 천황봉에 오른후

오색약수쪽으로 하산하는 꽤 긴 코스였습니다.

등반 도중, 천불동 계곡 중간쯤에서 시냇물을 만났고

거기서 등산화를 벗어 발을 물에 담그고 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바로 옆에서 나처럼 쉬고 있던 남자 한 사람이

" 술 한 잔 하실래요?" 하며 내게 물컵을 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도 혼자였고,술은 40도 짜리 양주였습니다.

나는 거절하기가 뭣해 잔을 받았고

그것을 계기로 그 사람과의 긴 대화가 시작 되었습니다.

나는 평소 숫기가 없는데다가 말주변까지 없는 숙맥이어서

누구를 만나건 상대방의 말을 끝없이 들어주는 입장이지

내 의견을 적극 피력해보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말을 경청하는 내 자세가 마음에 들었던지

말이 점점 빨라지고,목소리의 톤을 높여가며 열변을 토하였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신을 "재가 수행자" 라고 소개 하였습니다.

계룡산 어디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그에게서 번득이는 어떤 수행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많은 말을 하였고, 그 많은 말들을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꼭 한 가지만은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인즉슨, 개나 말같은 짐승에게 순종이 있고 잡종이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그런 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인간은 다 동등하게 지음 받았고,귀천이 없다고 배워 왔지만

그것은 종교나 헌법상에서나 하는 말이고

사람도 개처럼 나면서부터 귀한 사람, 천한 사람

다시 말해 순종과 잡종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은 우선 얼굴 생김새부터가 다르고,

하는 말이나 짓거리도 완전히 표시가 난다면서

귀한 사람은 귀하게 살고,천한 사람은 천하게 살아야지 별 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나랏님도 어떻게 못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북한 같은 독재 국가에서도 귀하게 생긴 사람은 다 밥 걱정 없이

대접 받으며 잘 살게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너무 과도하게 혜택을 주는 것은

인간사 물정을 모르는 무식한 짓이고,헛짓거리라면서

천하게 태어난 사람은 너무 욕심부리거나 불평하지 말고,확실하게 천하게 살다가 죽어야

그래야 요 다음 생에 귀한 부자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방글라데시가 가난한 것은, 방글라데시 사람 대부분이 천하게 태어나서 그렇고

미국이 잘 사는 것은, 미국 사람 대부분이 귀하게 타고났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주장을 들어보니 일면 그럴듯하기도 하고

말하는 품새로보아 수행을 한다는 그의 주장이 아주 뻥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그의 말을 듣다가 한 가지 의문이 생겨 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 : "천하게 태어난 사람은 욕심이나 불평 없이, 그 가난을 받아들이고

      확실하게 가난하게 살다 죽어야 요다음 생에서 귀한 부자로  태어난다, 이 말씀이지요?"

수행자: "그렇지요.그 왜,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자기의 그릇을 모르고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너무 욕심부리면 다음에 또 천하게 태어 납니다."

나 : " 그럼...귀한 부자로 태어난 사람이 자기가 가진 부를 마음껏 즐기고 누리다가 죽으면

      그 부자는 요다음 생에서 어떻게 태어 납니까.또 부자로 태어 납니까?"

수행자 : " ............ "

그렇게 말을 잘하던 사람이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 보았는지,가타부타 말이 없다가

그래도 "수행자" 체면에 가만 있을 수가 없었던지 잠시 후 몇마디 하긴 했는데

지금 내 기억에 없는 것으로보면 그렇게 똑 부러지는 답변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어떤 사람이 쓴 "인도 여행기" 에서 읽은 글이 생각 납니다.

인도에는 거리마다 거지들이 우글우글 한데,그 거지들의 특징과 공통점은

자신이 거지라는 사실에 대해 불평이나 불만이 전혀 없고

부자들에 대해서도 부러움이나 시기, 질투심을 조금도 갖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자기가 지금은 거지지만,요 다음 생에는 부자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건,이 이론이 어찌보면 참 단순하고 어리숙한 이론인데

증명도 되지 않은 이런 허술한 운명론을 어째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느냐,하는 겁니다.

한국에도 옛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 3대 가는 부자 없고,3대 가는 거지도 없다."라는 말도 저 위의 운명론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니,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는 이론을 미신이라고 간단히 부정할 수만도 없지 않습니까?

순종이니,잡종이니하는 이런 막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돈그릇,건강,수명같은 것을 어느정도 받아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고

그것은 유전자의 연구에서도 점점 뚜렷이 밝혀져가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 운명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다면 인생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부자가 계속 부자로 태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내가 어째  저 돌팔이 수행자처럼 점점 주책바가지가

돼 가는 것 같다! )

첫째는,자기가 가진 부를 너무 누리지 말고, 너무 과시하지 말라는 것.

둘째는,이것이 더 중요한데,자기가 가진 부를 가난한 이웃과 나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만 하면 계속 부자로,계속 귀한 사람으로,저 수행자 말을 빌어서

잡종이 아닌, 계속 순종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위해 있고,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래서 어느 경에 보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고 한 것이고

그래서 부자로 태어나는 것이 마냥 좋은것만도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나는 순종인가,잡종인가?

거울 앞에 서서 내 얼굴을 들여다 보니 100% 잡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실례되는 질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어느쪽입니까?

순종쪽입니까,잡종쪽입니까?

너무 불쾌한 질문이었나?

그렇다면 취소 하겠습니다.

이 글은 그냥,웃자고 쓴 글입니다.

그렇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강 봄.  

     http://cafe.daum.net/rkdqha17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