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비화] 하와이와 한국의 인연
에이 그 하와이 전라도 놈들, 그 하와이들
이의재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심의위원, 스포츠서울 국장)
8.15 해방 후 미군이 한국 땅에 들어오면서 국적도, 출처도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외래어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 “하바 하바”라는 말도 한몫 끼어 있었다. 일부 한국인들은 이 말을 “빨리 빨리”라는 우리말의 영어인 것으로 알고 급한 일만 생기면 곧잘 “하바 하바”라고 재촉했다.
실제로 미군들도 급한 일이 생기거나 일을 독촉할 때는 “하버 하버”라고 했기 때문에 “빨리 빨리”와 “하버 하버” 또는 “하바 하바”는 같은 뜻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들이 그 당시 사용했던 “하버 하버”는 우리말의 “빨리 빨리”와 의미는 같았으나 정식 영어가 아니었다.
1941년 12월8일 (현지시간으로는 7일) 일본군이 하와이의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때 미국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너무도 비극적이었고 치욕적이었던 진주만사건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미국에서는 진주만(PEARL HARBOR)의 “만(灣)” 즉 “하버”를 허리 업(HURRY UP) 또는 퀴클리(QUICKLY) 대신 쓰기로 했던 것이다.
하와이와 관계되는 또 다른 말이 우리 사회에서 유행했던 일이 있다. 전라도 사람들을 일컬어 “하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전라도 사람들을 왜 “하와이”라고 했을까 ? 여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박용만 이라는 항일 독립운동가가 1912년 하와이로 가서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의 기관지인 ‘신한국보’라는 신문의 주필이 되면서 하와이와 인연을 맺게 됐다. 그 뒤 1919년 4월 중국 상해에서 대한임시정부가 수립됐을 때 박용만 선생은 외무총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임시정부의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였다.
박용만 총장은 그 이전에 하와이에서 농장을 경영하면서 자급자족의 길을 열어놓고 항일무장독립운동 단체인 ‘대조선국민군단’을 결성했다. 본격적인 군사훈련을 실시해서 일본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군사조직을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이때 130여 명의 군사조직원 대부분이 전라도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다.
1919년 3월에는 단체의 명칭을 ‘대조선독립단’으로 개칭한 뒤 상해임시정부에서 외무총장으로 선임됐던 것인데 대한임시정부 대통령 이승만 박사가 하와이로 오게 됐다. 이승만 박사는 하와이에서 ‘한인학원’을 경영하고 ‘한국태평양’이라는 주간 잡지를 창간했는데 이미 하와이에 와서 정착한 ‘대조선독립단’ 인사들 즉 전라도 사람들과의 사이가 좋지 못했다.
전라도 사람들로 구성된 ‘대조선독립단’이 이승만 박사가 한국인들의 학교와 교회에서 공금을 유용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씌우며 이승만 박사를 축출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됐다. 미국으로 건너간 이승만 박사는 그 뒤 “하와이”란 말만 나오면 “에이, 그 하와이 전라도 놈들, 그 하와이들”이라고 “하와이=전라도 사람들”로 지칭하게 됐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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