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근절법과 사학법
한나라당 진수희 의원이 촌지를 준 학부모와 받은 교사를 모두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가칭 ‘촌지근절법’을 발의했다. 진수희 의원은 “촌지관행을 없앨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결과적으로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 믿음이 회복될 것이다.” “학부모님을 비롯해 교육현장의 주도자인 선생님들께서 열정을 갖고 법안제정에 동참해 달라”고 촉구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을 비롯한 일부 시민사회단체들도 지지선언을 하고 나섰다.
일선 교사들은 드러내 놓고 반대할 수도 없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다. 네티즌 간에도 이 법안을 두고 공방이 분분하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교사집단 전체가 촌지나 받는 파렴치 집단으로 비춰질까 두렵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는 반응이다. 많은 학부모·시민들은 “지긋지긋한 촌지를 없애 달라.” “오죽하면 이런 법안까지 나오느냐”며 아직도 일선학교는 촌지수수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진표 교육부총리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아주 극소수에 해당하는 것을 제도화해서 선생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하는 점도 고려해봐야 된다”며 “제도나 처벌로 해결하기에 앞서 선생님을 존경하는 문화와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교조 이민숙 대변인도 “촌지근절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법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현행법으로도 촌지수수는 처벌할 수 있고, 조합원들도 촌지 안 받기 운동을 전개해 현재 상당부분 사라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촌지근절법을 둘러싼 공방을 보면서 필자는 한 가지 흥미 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 공방이 사학법 개정과 관련한 공방과 너무나 흡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교사가(사학이) 다 비리집단인가?” “극히 일부의 문제를 가지고 전체 교사(사학)를 파렴치범으로 몰아가고 있다.” “현행법으로도 촌지수수(비리)는 처벌할 수 있다.” ··· 공방이 되는 주장들에서 ‘교사’를 ‘사학’으로, ‘촌지’를 ‘비리’로 바꾸어 넣으면 거의 완벽히(?) ‘대칭적 변화(變話)’가 가능하다.
앞서 소개한 김진표 부총리와 이민숙 전교조 대변인의 말에도 이 대칭적 변화를 정확히 적용할 수 있다. “··· 사학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 ” “ ··· 사학을 아끼는 문화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학비리 척결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지 법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행법으로도 사학비리는 처벌할 수 있고, 사학도 자정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필자는 개정 사학법을 반대하는 것과 동일한 논리로 진수희 의원의 법안을 반대한다. 이민숙 전교조 대변인의 말마따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지 법만 만드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편이다. 물론 이 대변인이 인식하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필자가 생각하는 구조적 문제의 내용은 전혀 다를 것이다. 촌지든, 사학비리든 문제해결의 열쇠는 ‘학부모·학생의 선택’과 ‘경쟁’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와 교사에 대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촌지교사는 양심교사와의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으며 비리사학은 건전사학과 경쟁할 수 없다. 경쟁구조는 비리·부패·무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장치다.
어찌되었던 사적자치의 영역인 사학 문제와 관련해서 법적강제를 강요하고,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매도하던 교육부총리와 전교조 관계자의 입에서 ‘법보다는 제도,’ ‘전체가 아닌 일부’라는 표현이 나오다니 진 의원의 법안이 ‘의도하지 않은 절반의 성공(?)’은 거두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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