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이 영국에서 돌아와 정계 복귀를 선언했을 때 나는 전남 광주에 있었다. 택시를 타도 음식점엘 가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복귀한 김대중에 대해서 물어보면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그들은 "자신은 대통령병 환자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제 보니 김대중 선생의 대통령병은 정말 심각한 것 같다." 라며, 은퇴 약속을 지키고 존경하는 이 나라의 어른으로 남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시했다.
실제로 당시 김대중에 대한 호남의 여론은 매우 좋지 않았다. 그들은 전국민을 상대로 TV 앞에서 한 자신의 굳은 약속을 깨고 구차하게 정계에 복귀한 김대중을 힐난했다. 호남의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해 했고, 이제 그 늙은 몸으로 무얼 하겠냐며 "김대중은 끝났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의 김대중에 대한 생각은 호남이 낳은 자랑스런 이 나라 민주화 운동의 대부에서 호남의 부끄러운 대통령병 환자로 바뀐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선거가 시작되자 호남은 그에게 모든 표를 던졌다. 손가락질을 하고 절대 그에게 투표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들의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김영삼으로 대선주자로 결정된 상황이었다. 그것을 승복하지 않고 뛰쳐나가 신당을 창당하여 정권과 반대 입장에 있던 사람들이 염원하였던 후보 단일화를 깬 입장이었다. 그런 그에게 모든 것을 던진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다.
그 후 김대중은 꿈에 그리던 대로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호남의 자존심은 얼마간 치유되었다. 홀대 받던 호남은 김대중이 보였던 좋지 않은 그간의 과정에 대한 기억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대신, 호남 출신 대통령을 탄생시킨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 했다. 드디어 대통령을 자신들의 손으로 만들어 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환호할 만하지만, 그들이 갈망하였던 어떤 정의, 올바름 등의 가치를 버리고 오로지 호남 출신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하였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하다면 호남은 마침내 호남 출신 대통령을 낸 것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래도 대통령을 내었다는 것은 자랑할 만하니까.
그러나 호남은 그 이후에도 계속 김대중에게 올인하였다. 그가 정부 탄생 이래 최대의 부패 정권으로 기록되었어도, 국민의 합의 없이 북한에 막대한 자금을 비밀리에 제공하였어도, 카드 남발로 수많은 신용불량자가 생겼어도 그러한 사실은 애써 외면하고 변호해주면서, 그와 그의 추종 정치 세력에게 올인하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호남이 그렇게도 간절히 추구하였던 정의나 올바름 같은 것은 이미 허물어져 갔고, 그들의 그러한 모진 집착으로 인하여 호남의 간직했어야 할 선비 정신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지역 이기주의에 매몰되어 갔다.
김대중이 과연 호남에게 준 것이 무엇인가. 김대중이 과연 호남에게 무엇을 주었기에, 호남의 김대중에 대한 집착이 그렇게도 짙은가. 김대중이 호남에게 준 것이 있다면 그가 대통령이 됨으로서 호남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는 것 정도이다. 애써 이 나라를 민주화 시킨 선구자라고 김대중을 자랑스러워 하고 싶겠지만, 민주화라는 것의 실상이 군출신들에게 있던 정권을 군출신이 아닌 정치세력으로 옮겨온 정치적 힘겨루기에 지나지 않은 단면이 있음을 무시할 수 없다면, 그를 민주화의 무엇이라고 쉽게 부를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소위 민주화 인사란 사람들이 권력을 얻은 후 보여준 비민주, 반민생, 부패, 거짓 등의 결과물은 민주화란 거창한 장식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니, 김대중을 "민주화의 무엇"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엔 어쩐지 뒤통수가 가려운 일이다. 결과적으로 김대중이 호남에 준 것은 그가 대통령이 됨으로서 호남의 자존심을 세워 주었다는 것 정도이고, 그 외에 김대중이 호남에 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5.18을 김대중이 밝혀 준 것에 대해 호남은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의 공을 인정하고 어떤 면에서는 매우 고마와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5.18에 대해 김대중이 말한 대로 민주화운동이라고 스스로 칭송하는 것은 정말 떳떳하게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5.18이 진정한 민주화운동이었다면 모든 국민이 거기에 동의했을 것이다. 100%의 국민은 아니었어도 적어도 95% 이상의 국민은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거기에 동의하는 국민은 50% 훨씬 이하, 아무리 많아도 30%는 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언론과 모든 학자들이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정부가 공식명칭으로 그렇게 정의하였기 때문이고 개인들로서는 호남을 더 이상 자극하고 싶지 않아서일 뿐이다.
불순한 정치권의 부추김으로 학원에서 자살의 행렬이 이어졌을 때 그때마다 그들은 열사가 되었고 우리나라는 갑자기 많은 열사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유관순에게 부쳐졌던 열사라는 호칭은 더 이상 유관순의 것만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여 유관순에게 열사의 호칭을 주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단 1명도 없는 반면에, 철 없이 목숨을 끊은 그들에게 열사라는 호칭을 주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많다는 사실에서 어떤 세력들이 부친 열사라는 호칭은 어울리지 않는 과장이다. 쉽게 말해 자화자찬에 불과한 일이다. 그 경우처럼 정부에서 5.18을 공식적으로 민주화운동이라고 호칭하였다고 하여, 스스럼 없이 그 호칭을 자랑스러워 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행동이다.
호남은 5.18로 고통을 받았다. 고통도 보통 고통이 아니다. 자기 나라의 군인들의 손에 처참히 죽음을 당하였다. 소위 불순분자가 있었고 선동자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애꿋은 민간인 피해자가 훨씬 많았다. 그리고도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이면서도 숨을 죽이고 살아야만 했다. 이 고통은 너무나도 엄청난 것이다. 때문에 호남은 전국민들로부터 위로를 받아야 하고 보상을 받아야 하고 함께 울어 고통을 나눠야 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극적 사고가 민주화운동이라고 불리워서는 안된다. 호남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느 정도 낯 뜨거운 일이다. 5.18은 당시 정권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간의 싸움의 와중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비극적 사고이다. 물론 이를 부추긴 불순 세력이 있었다고 본다.
그 비극적 사건에 김대중이 긍정적 보탬을 준 것은 없다. 오히려 그는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사고를 부추겼고, 수많은 데모와 5.18을 적극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이룬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김대중이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공식화 한 것도 호남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자신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권과 벌였던 숱한 싸움을 민주화라고 지칭하고, 호남에게 찬란함을 씌움으로서 자신이 찬란해짐을 적극 활용한 것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김대중은 자신이 벌였던 정권 싸움에 호남을 공범으로 끌어들여 상처를 입힘으로써 자신과 일종의 교감의 틀을 만들고 결국 영원한 자신의 추종 지역으로 만든 것이다.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공식명칭을 정하고, 피해자들을 민주화 유공자라고 하고, 돈으로 보상하였다고 해서 김대중의 과오가 없어질 수는 없다. 김대중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량한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피를 이용했다.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러한 고통의 반대편에 선 정권에 잘못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고통에 해당 정권과 김대중은 똑같이 50:50의 잘못이 있다. 그러나 김대중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화하여 민주화운동의 영웅 칭호를 스스로에게 내리고, 반대 입장에 있던 정권은 살인마라고 모함했다. 그렇게 김대중은 호남과 국민들에게 최면을 걸어왔다.
김대중이 호남에게 준 것은 정말 없다. 김대중은 끝까지 호남을 이용만 해왔다. 호남은 김대중뿐만 아니라 김대중의 못난 자식에게까지 오랫동안 정치가가 되도록 허락하기까지 했으나, 김대중이 호남에게 준 것은 없고 필요할 때마다 자신을 위하여 이용하기만 했다.
도청 문제가 일어나자 김대중은 돌연 병원에 입원했다. 김대중을 호남의 자존심으로 인식하고, 또 애써서 그렇게 인식하려고 하는 호남은 김대중에게 상처가 나는 것에 대해 몹시 불쾌해 했다. 노무현 정권이 우회적 사과를 하고 "김대중은 책임없다" 국민에게 발표하자 김대중은 곧 퇴원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 때에도 도청이 있었고 무선전화 도청 장비까지 개발했다는 해당 부서의 구체적 증언이 나옴으로써 김대중 정권의 도청 범죄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자 김대중은 서둘러 광주 5.18 묘역부터 찾았다. 김대중은 그 자리에서 호남인들의 자신에 대한 관심에 대한 감사 예찬과 호남인에게 빚 운운하며 송구함도 아울러 표시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센터 개관식에 참석이 광주 방문의 이유였지만 김대중의 광주 방문 타이밍은 절묘했다.
김대중은 평소 호남에게 진심으로 빚을 졌다고 말하고 그 빚을 갚으려 애썼는가. 김대중은 항상, 언제나, 늘 마음 속에 5.18 묘역의 영령들과 호남인의 애정을 가슴에 품고 산다고 하겠지만, 멀리서 보는 입장에서 보면 김대중은 위기가 닥치자 또 호남을 이용했고, 예의 호남인들의 변함 없는 사랑을 요구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호남이 김대중을 키운 것은 분명하니 호남에 감사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대중이 말로서는 호남의 안녕을 기원하겠지만, 실제로 김대중이 호남인들을 안녕토록 한 것은 전혀 없다.
김대중은 자신을 키워준 호남에 감사해야 하겠지만, 호남이 그에게 감사할 것은 없다. 그가 호남에게 준 것은 정말 없다. 단지 호남이 그를 통해서 어떤 한을 풀고 원했던 어떤 만족을 느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는가. 이제 호남은 김대중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한다.
호남의 자존심을 위해 김대중을 계속 미화 찬양해서는 안된다. 나는 호남이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지켜왔고 그렇게도 갈망하였던 정의, 올바름을 이제는 다시 살려 지켜주기 바란다. 나는 호남이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나는 호남이 대한민국의 꼿꼿한 선비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더이상 김대중이란 망령에 사로잡혀, 그 귀한 호남의 가치들을 버리고 그의 죄가를 변호함으로써 호남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호남의 자존심은 김대중이 세워줄 수 없다. 오로지 호남 스스로가 세우는 것이다. 김대중은 오히려 호남의 자존심을 손상시켜 왔다. 김대중 하나를 지키기 위하여 호남이 무릎쓴 모멸은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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