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세계 1위 자동차 업체 폴크스바겐 그룹의 배출가스 조작 사건 원인을 이렇게 진단했다. 감독이사회란 독일 기업 특유의 조직으로, 경영진을 감독하는 이사회 같은 기구이다. VW 감독이사회를 20년 넘게 주무른 사람은 올 4월에 퇴출당한 창업자의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였다. 그는 네번째 부인을 이사로 앉힐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렀다.
그런 피에히를 내좇은 것은 창업자의 친손자인 볼프강 포르셰 현 감독이사회 의장이고, 그는 이번 사태로 물러난 마르틴 빈터코른 전 CEO(최고경영자)의 후견인이었다. '형제(兄弟)의 난'으로 얼룩진 우리 재벌을 뛰어넘는 복잡한 권력구조이다.
◇1등의 저주…혁신의 한계와 과도한 성과주의 VW 사태가 터지자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는 '1등의 저주' '연산 1000만대의 저주'가 회자됐다. 1929년 이후 48년간 1위를 지켜오던 제너럴 모터스(GM)는 937만대 생산체제(2007년)에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파산직전까지 몰렸다. GM의 자리를 이어받은 도요타 역시 1000만대 생산체제(842만대)를 눈 앞에 둔 2009~2010년 가속페달 결함 때문에 1000만대 대량 리콜을 하면서 주저앉았다.
이번 VW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상반기 504만대로 도요타를 2만대 차이로 제치고 1위에 오른 지 두 달 만에 무너진 것이다. 2007년 취임한 빈터코른 전 VW CEO는 “도요타를 넘어서라”는 요구를 반복했고, 최근엔 2018년까지 연산 1000만대로 가겠다는 청사진까지 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VW는 미국 디젤시장을 집중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중국과 유럽에서 강한 VW 입장에서는 미국에서 강한 일본의 점유율을 빼앗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유럽보다 규제 기준이 2배 정도 까다로운 미국 디젤시장을 뚫으려면 ‘친환경 엔진’ 개발이 필수였다. 하지만 개발이 여의치 않자 속임수를 쓴 것이다. 안드레 스파이서 런던시립대 교수는 “높은 연봉을 받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을 약속하는 CEO들은 직접 속임수에 가담하지는 않지만 하위 경영자와 엔지니어들에게 무언(無言)의 압력을 가하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 북한 같은 VW 기업구조 VW의 몰락에는 전문 경영인의 도덕적 해이가 전부는 아니다. 전문 경영인을 견제할 수 있는 오너의 감시조직도 붕괴됐고, 무엇보다도 현장의 목소리가 경영층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폐쇄적 조직 문화가 가장 큰 문제였다는 지적이다.
최근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SZ)은 VW의 기업구조를 ‘북한’에 비유했다. 이 신문은 "VW은 창업자 가문이 3대(代)째 경영을 주도하면서 내부의 폐쇄적인 경영 결정방식을 고수한다"면서 "이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경영 방식으로 외부의 시각이 경영층에 전달되기 힘들었다"고 꼬집었다.
VW 감독이사회의 19명 멤버 가운데 13명이 회사 관계자이며, 전체 VW 감독이사회 의결권의 50.7%를 대주주가 장악하고 있어 좀처럼 오너들의 생각에 반하는 결정을 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VW은 차량 조립부터 부품까지도 모두 직접 관여하는 수직계열화를 추구하고 있어 외부 부품업체나 협력사들의 목소리도 전달되기 힘든 구조다. 김기찬 가톨릭대 교수는 "아웃소싱을 거의 하지 않는 VW의 시스템은 상명하달 명령 체계가 강화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과도한 밀착이 화를 키웠다.
VW 사태 발생 전에 사전(事前) 조기 경보는 수차례 있었다. 2007년 세계적 부품업체 보쉬가 VW에 이번에 문제가 된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면서 "이를 활용한 배출가스 조작은 불법"이라고 지적한 문건이 나왔고, 2011년엔 VW 내부 기술자가 작성한 "불법적인 배출가스 조작이 이뤄지고 있다"는 보고서도 확인됐다. 또 2013년엔 EU(유럽연합) 집행위 산하 합동연구센터(JRC)는 2013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디젤차량의 배출가스 시스템이 '차단 장치'를 통해 조작돼 검사 결과가 왜곡될 수 있다”고 경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문제가 오랫동안 드러나지 않은 것일까. 우선 VW을 감독해야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VW과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얽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그마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 겸 경제·에너지부 장관은 VW 그룹 감독이사회 위원 출신이자 VW 본사가 있고, VW 지분 20%를 갖고 있는 니더작센주(州)의 주지사 출신이다.
여기에 슈뢰더 전 총리, 불프 전 대통령이 모두 VW 감독이사회 출신이다. 독일 환경단체 움벨트힐페의 위르겐 레쉬 회장은 “독일 정부도 오래 전부터 자동차업체들이 제출한 서류상 배출가스량과 실제 주행 시 배출량이 크게 차이나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학)는 "VW 사태는 특정산업, 특정기업의 비중이 과도하게 커졌을 때 이를 정부나 지역 사회가 제대로 규제하고, 감독할 수 있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도 던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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