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자기 계발서에서 쉽사리 접할 수 있는 이 문구는 비단 우리 개인의 삶 속에서만 의미있는 말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에서도 유의미한 말이다. 더구나, 우리가 바로 세우려는 정의의 대상이 자신의 권력욕을 위해 수백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그 스스로 대통령이 된 인사라면 더욱 그러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집권과 동시에 '정의사회 구현'을 구호로 내세웠다. 하지만 그의 통치가 끝난 지 25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반란과 내란의 죄를 저지른 전임 대통령이 아직도 이 땅에서 '권력을 가진 자'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반역자가 호화스러운 저택에서 연간 8억원의 경호비용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정의로울 수 없다. 지금이라도, 정의를 바로 세우려 노력이 필요하다.

지난 16일,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를 비롯한 일가족 자택 5곳과 장남 전재국 씨가 대표로 있는 시공사 등 6곳의 기업체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과 압류를 시작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납한 추징금 1670여 억원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한 조치이다. 1997년 전 전 대통령은 법원으로부터 추징금 2205억원을 선고 받은 후 아직까지도 전체 추징금의 24%인 533억원만을 납부한 상태이다. 그 동안 전 전 대통령은 통장 잔고가 29만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해왔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진작 그의 재산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압류는 필요했다. 많이 늦은 조치지만, 그나마 이제라도 압류 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에 반가울 따름이다.

이번 수색과 압류조치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지난달 국회에서 통과시킨 '전두환 추징법' 덕분이다. 이 법은 공무원의 불법취득 재산에 대한 추징 시효를 10년으로 늘리고, 직계 존비속과 제 3자에게서도 추징이 가능하도록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을 개정한 것이다. 이 법에 의거해 앞으로 전재국 등 전두환 일가족들에게로 옮겨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들이 대거 몰수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1990년대 중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다수가 친지들에게 상속된 것은 명실상부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두환이 누구인가. 박정희 사후 도래한 민주주의로의 희망적 시기 <서울의 봄>을 광주 학살의 비극을 통해 짓밟고 그 스스로 대통령이 된 자이다. 이후 사형 판결을 받았음에도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정치적 사면을 받아, 통장잔고 29만원으로 그 동안 호의호식하며 살아왔던 자다. 이러한 사람이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고, 억대의 세금을 소모하며 경호받는 사회라면 우리가 어떻게 정의를 말하고, 정의를 가르칠 수 있겠나. 광주 학살 등을 통해 내란과 반역의 죄를 범한 그에 대한 처벌은 사실 재산 환수만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동안 이 턱없이 부족한 처벌에 대해서도 소홀했다. 지금이라도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부족한 처벌이나마 제대로 집행해야만 한다.

이번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해 일각에서는 국정원 문제에 대한 물타기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것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간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산을 환수하는 문제는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 이상으로 중요한 문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이유로 그의 죄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큰 분노를 느낄 수 없을지 모르지만, 만약 오늘로 시간을 당겨와 그와 같은 일이 눈 앞에 벌어졌다고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큰 부정이며, 이 얼마나 큰 죄악인가. 한국 근현대사를 통틀어 이만큼 부정의하고 비극적인 사건이 존재하기는 했던가.

그러한 측면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압수 수색과 압류 절차를 밟고 있는 검찰에게 이번만큼은 격려의 목소리를 보내고 싶다. 전두환 추징법으로 공소시효가 2020년 10월까지 늘어 또 지리멸렬한 수사가 진행되지는 않을지 걱정했는데 추징법이 발효된 지 4일만에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보여준 이유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이 사안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세우는 것에 중요한 문제인 이유이기도 하다.

검찰의 수사가 사회적인 관심을 끌면서 시작된 만큼, 그 결과도 훌륭하길 바란다. 검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가족이나 제 3자에게 유입된 모든 것들을 찾아 국고로 환수하고, 더 이상 내란과 반역의 죄를 저지른 전직 대통령이 호화생활을 누리지 못하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5.18 민주화 운동이 20여 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라도 '언젠가는 정의와 진실이 승리하기 마련이라는 진리'를 바로 세울 수 있길 바란다. 정의사회 구현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응당한 처벌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